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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때 인류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성공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다. 백신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국내 기업도 코로나 백신·치료제 임상실험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토종 백신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불행히 국내 백신은 아직 국가출하승인을 얻지 못했고, 치료제 역시 19개 중 1개가 8월에 들어서야 상용화됐고 나머지는 개발을 중단했다. 결국 외국 기업인 모더나, 화이자가 개발한 백신을 위탁생산하거나 병입(甁入) 판매하는 등 세계 경쟁에서 뒤처졌다. 정부가 바이오 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지정하고 육성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고, 연간 9조원을 투자했다. 그런데도 정작 큰판이 벌어졌을 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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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산업(BT) 현 주소는?

“쌀을 물질로 취급할 때는 경제적으로, 이성적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양식으로 취급할 때는 벼의 생명력을 애정으로 키운다. 공업은 물질을 대상으로 하고, 농업은 생명을 대상으로 한다.” 일본의 농본주의자인 고(故) 다치바나 고자부로는 '농촌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농업(생명)과 공업을 한데 아우르는 게 바로 생명공학기술이다. 바이오(Bio)에 기술(Technology)을 접목시킨 연구 분야다.

바이오(Bio)는 우리 삶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학창 시절 물리에 상응하는 생물 과목을 배울 때는 물론 우리가 태어나 죽는 모든 삶의 전 과정이 이에 해당한다. 이를 대규모 생산 경제로 접목한 게 '바이오 산업'이다. 생명공학기술(BT)을 기반으로 생명체 기능 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산업을 총칭한다. 대표적으로는 의약이나 화학에너지, 식품, 환경 의료기기 산업 등으로 분류된다. 유사한 개념으로 '헬스케어 산업'이라는 것이 있는데 넓게는 의료 서비스 전체를, 좁게는 제약과 의료기기 산업을 말한다. 이와 상응해 '바이오 헬스'는 바이오와 헬스케어 산업을 아우르는 범위여서, 미래 유망 기술을 분류할 때 BT 분야와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도 바이오 산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서울시는 홍릉에 위치한 '서울바이오허브'에 바이오 스타트업을 위한 사무, 실험 공간을 제공하는 등 '강소연구개발특구(2020년 7월 지정)' 내 시설 운영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2017년 바이오허브 조성에만 288억원이 투자됐고, 글로벌 협력동 조성에 534억원이 투입됐다. 둘을 합한 약 8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은 모두 시설 투자비다. 사업화 지원 투자 규모는 빈약한 편이다. 서울시가 바이오·의료 기술사업화 지원사업을 위해 투자 금액은 2021년도에 47억원, 2022년도에 19억원 정도로 파악된다.

지난 연재에서 개발연대의 중화학공업 육성 패러다임으로 신산업 육성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바이오 산업 역시 3공화국 시절의 산업 육성책인 물리적 시설 투자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오송, 원주, 대구 등에 국가 산단을 조성했다. 바이오 산업과 같은 첨단 산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우수한 인력이 서울을 떠나기 싫어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방 중심의 스마트 국가 산단 정책이 과연 적절했는지도 평가가 필요하다. 특히 신산업 분야일수록 기존의 경계와 문법을 뛰어넘는 전략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신약 산업 육성…FDA 승인 역량 키워야

바이오 산업의 대표 분야는 의약산업, 제약 분야라 할 수 있다. 한국 바이오 산업은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적시 생산에는 실기했지만 적지 않은 신약 개발 성공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신약 수출에는 이른바 'K-신약 디스카운트'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외국의 객관적인 평가와 인증 기준을 채우지 못해 실질적인 역량에 견줘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약 분야에서 해외 진출의 첫 관문은 미국 FDA 승인이다.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달할 뿐 아니라 미주 시장 외에 유럽으로 진출하는 데도 FDA 승인은 없어선 안될 초대장으로 통한다. 국내 시장 판매를 목표하는 경우에도 미국 FDA 승인이 대단히 큰 메리트로 작용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한국 제약회사의 FDA 인증 취득 실적은 매우 부진한 편이다.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 최대 제약시장인 미국시장의 전략이 부족한 데에 있다. 미국 FDA엔 사전상담 제도라는 게 있다. 심사관과 신약 인증에 관한 사전 상담을 실시하면 FDA 승인 심사 전의 합의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는 FDA 심사관 출신을 영입해 사전 상담 제도를 활용한다. 한국 대기업이 이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럴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경우 FDA 관련 인사를 초빙해 세미나 등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대응 역량을 끌어 올리는 데 아주 유용할 것이다. 한국은 연간 3조원 이상을 신약 개발에만 투자한다. 이 비용 거의 전부가 인프라 구축이나 후보 물질 발굴 등에 집중되면서 FDA 동향 파악은 등한시한 결과로 인증 취득 실적 부진이라는 결과를 낳은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산업 분야 동향 분석과 지원이 미흡하다. 먼저 정부가 실시하는 해외규격 인증획득 지원사업의 실효성을 점검해봐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글로벌 성장정책과는 해외규격 인증 획득에 소요되는 인증비나 시험비 컨설팅 비용의 50~70%를 기업에 지원한다. 서울시도 홍릉바이오 강소연구개발특구 사업을 통해 K-바이오 기업에 글로벌 시장 진출에 필요한 지원을 시작했다. 국내의 많은 신약 개발 기업이 이런 루트를 잘 알고 있는지, 또 정부가 루트를 잘 안내하고 있는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제도적 지원이 국내 신약과 바이오 기업에 골고루 돌아가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 지원에 더해 국내 바이오산업 전체의 경험과 역량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기술력이 뛰어나고 사업화 가능성이 큰 국내 중견 및 대형 제약사의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도 필요해 보인다. 이들이 다시 중소기업과 협력하고 멘토링하면 국내 제약 산업 전체를 리드하고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대면 임상·특허 전략 등 세계 시장 준비해야

신약 개발의 중요한 단계의 하나는 임상시험이다. 지금 글로벌 추세는 비대면 임상시험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글로벌 위탁 기관은 온라인 비대면 진단, 원격 처방, 웨어러블 진단 기기 활용 등 임상시험을 집중이 아닌 분산형으로 진행하고 있다. 모더나도 임상시험 관련 의료기관 방문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유럽 기업이나 해외 규제 기관 또한 임상시험 기간동안 시설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원격 임상시험에 응하도록 정책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비대면 임상시험을 가로막는 규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의료법에는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제33조 제1항)'라고 돼 있고, 의료기기법에는 임상시험 기관에서 임상시험을 하도록 규정(제10조)돼 있기도 하다. 세계적 흐름에 조응하는 쪽으로 국내 법령도 손봐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BT 분야 연구의 효율성과 평가 기준도 짚어볼 시점이다. 한정된 자원이 보다 경제적인 방향으로 배분되는 게 개인과 기관, 정부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R&D 지원에 따른 지표별 성과를 낼 때 해외 특허보다는 SCI(E)급 논문 실적을 평가한다. 2019년 기준으로 SCI(E)급 논문은 약 1만6000건에 이르지만 같은 기간 해외 특허 등록 건수는 약 600건에 불과하다.

R&D 결과물인 후보 물질을 기술이전 받아 임상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국내 산업생태계도 여전히 미흡하다. 신약 개발이나 바이오헬스 분야의 목표 시장은 곧 글로벌 시장이기 때문에 R&D 단계에서 사업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BT 분야 논문 특허 성과를 높이고, 사업화 제고를 위해 성과 평가 방법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기존의 기술 성과의 질적 평가 때 적용했던 '특허 건수 대비 기술이전 실시율'에 '사업화율'을 추가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

사업화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기존의 기술료, 매출액 기여, 수입대체 효과, 원가절감 기여 등 경제 성과 평가의 가중치를 상향 조정하는 것도 자극이 될 것이다. 표준지침은 과제별 특성 및 평가의 목적에 따라 정성평가의 결과를 가중치 및 척도에 따라 계량화(점수화)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두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는 바이오산업 글로벌 시장에 대응해 양질의 특허를 생산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른바 '제약주권'이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인류사적 사건이 됐다. 제약주권은 국제사회의 패권을 결정하는 관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총탄(bullet)'은 없으나 '알약(pill)' 한 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참전하자면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임성은 서울기술연구원장 ych5534@sit.re.kr

<필자 소개>

임성은 원장은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출제·선정 위원, 서울특별시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국책연구원 평가위원를 거쳐 현재 서울기술연구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