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기업 내 성평등과 ESG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 각국의 성 평등 수준을 비교해서 매년 발표하는 성격차지수(GGI)라는 것이 있다. 매년 GGI가 발표될 때마다 '한국 성 평등 수준 르완다보다 낮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누리는 경제·사회·문화적 지위가 절대적으로 르완다보다 낮다는 말은 아니지만 GGI가 세계 최하위라는 평가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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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법무법인 원 변호사

지난해 한국의 GGI는 세계 156개 국가 가운데 102위였다. 특히 경제부문 GGI 가운데 세부 항목에 해당하는 고위임원 및 관리직 여성비율이 15.7%로 매우 낮아서 세계 134위이다. 기업에서 여성 임원과 관리직 여성 비율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처럼 강고한 유리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에 자본시장법이 개정되었고, 자본금 2조원 이상인 상장법인의 경우 이사회의 이사 가운데 적어도 1명 이상을 여성으로 구성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 때마침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확산하며 많은 기업이 이사회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여성 이사를 선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는 기업 가운데 여성 이사 비율은 5.7%로 전년 대비 1.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둔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다. 자본금 2조원 이상 기업의 전체 사내이사 421명 가운데 여성은 5명으로 1.2%에 불과하다. 전체 사외이사 752명 가운데 여성은 92명으로 12.2%이다. 기업들이 내부에서 여성을 이사로 승진시키기보다는 여성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충원하는 쉬운 방식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사로 승진시킬 만한 여성 인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상장법인의 여성 근로자 244명당 여성 임원이 1명인 반면에 남성 근로자 39명당 남성 임원이 1명으로 성별 격차가 6.3배나 된다. 여성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성 근로자 가운데에서 임원이 되는 비율이 현저히 낮아서 문제다.

일반적으로 출산·육아와 가사 노동의 많은 부분을 부담하는 젊은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업무배치나 승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입사하더라도 핵심 부서에 남성이 배치되고 좋은 평가를 받아서 먼저 승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이 누적돼 중간 관리직에 이르면 성별 격차가 크게 나타나고, 중간 관리직을 거쳐 성장한 여성의 숫자가 적으면 기업 내부에서는 임원으로 발탁할 수 있는 여성 인력 풀이 적어서 결국 사외이사를 외부에서 영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성 임원의 숫자만 늘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 여성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성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별 차이에 대해 고려하고, 성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불평등이 업무의 배치·평가·승진·교육 등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젠더 관련 데이터를 만들어서 이를 기업 경영에 반영해야 한다.

또 기업에서의 성평등 실현을 위해 성희롱이나 성차별 등에 관한 구제 절차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대부분 기업이 성희롱 관련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지만 막상 사건이 발생하면 기업 내부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차 피해 가능성, 비밀유지가 어렵다는 점, 가해자가 상급자나 임원인 경우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어려운 점 등 자체적인 조사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자칫하면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는 커다란 리스크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외부기관에 위탁해서 피해 신고를 접수하고, 중립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진상조사를 하며, 피해자 보호와 비밀 유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ESG를 평가하는 많은 기관이 기업의 준법경영에 관한 평가항목에서 기업의 내부고발제도가 얼마나 잘 정비되어 있는지를 중요한 지표로 보고 있다.

기업에서의 성 평등 실현은 ESG 평가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에 해당된다. 성별 격차를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법률과 제도가 기업 내부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갈 때 비로소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정 법무법인 원 변호사 yjlee@onelawp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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