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분야 세계 1위 외형 성장에도
시스템반도체 부진 등 곳곳 위기론
투자 세액공제·산단 국비 지원 확대
기업 반도체 투자성과 극대화 기대
정부가 21일 발표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은 국가 전략 무기로 급부상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됐다. 반도체 패권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적인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적기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취지다. 공급망 재편으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진 가운데 역량을 갖춘 분야는 초격차를 유지하고 시스템반도체와 인력 양성 등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전방위 지원 정책이다.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 어떻게 나왔나
반도체는 9년 연속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이다. 그러나 최근 시장 변화는 우리 산업의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산업 역량과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메모리 분야 세계 1위라는 외형적 성과에도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업계는 만연한 인력난에 허덕이는 상황이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 진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생태계가 취약해 해외 의존도가 높다. 반도체 시장이 최근 20%대의 가파른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해 6000억달러로 급성장했지만 시장을 주도할 경쟁력이 부족, 생태계 곳곳에서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업 투자가 절실하다. 연구개발(R&D)로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고 선제적인 설비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반도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하지만 각종 규제와 미약한 세제 혜택으로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유인책이 부족했다. 미국과 대만, 중국, 일본 등이 대규모 투자 인센티브로 자국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 투자까지 적극 유치하는 것과 대비됐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반도체 투자를 늘리기 위해 규제를 풀고 막대한 인센티브를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규제에 발목을 잡히고 투자를 유도할 지원 정책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위기 의식 느낀 정부, 5년간 340조원 투자 전략 수립
이번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은 이러한 위기론을 타개하고 기업 투자를 최대한 신속히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340조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기업 투자를 촉진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정비하고 인센티브 확대로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 용인과 평택 등 국가 핵심 반도체 산업 단지에 공급될 전력과 용수 등 필수 인프라 구축 비용을 국비로 지원한다. 용인 클러스터 조성 시 여러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 용수·전력 공급 논의 과정에서 허가 지연 등 어려움이 있었다. 필수 인프라 구축 지원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허가 신속처리 특례를 강화해 중대·명백한 사유가 없으면 산단 조성 관련 인허가 신속 처리를 의무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기업 투자 세액 공제도 높였다. 대기업 기준 6~10% 수준이었던 세액 공제 비율을 8~12%로 2%포인트(P) 상향했다. 다른 국가 대비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기업 투자를 이끌어 낼 동력을 강화했다. 또 세액 공제 대상도 확대, 첨단 공정 장비 외 테스트, 반도체 설계자산(IP) 설계·검증 기술 투자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화학물질·안전 규제를 완화한 것도 업계에서 환영할만한 조처다. 정부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상 유해 화학 물질 취급 시설 관련 기준에 반도체 특화 고시를 제정한다. 설비 교체가 잦은 반도체 특수성을 감안했다. 유·누출 확산 방지 장치 보유 시, 긴급 차단 설비 등 시설 기준 적용을 면제하고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른 시설 기준을 인정, 설비 검사량과 검사 기간을 단축한다. 반도체 첨단 제조 공정에 필수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이 국내에 신속하게 설치되도록 고압가스안전관리법상 규제도 완화할 방침이다.
◇민관 협력으로 반도체 인력난 해소
19일 교육부가 발표한 반도체 인력 양성 전략에 더해 민관이 협력하는 반도체 인재 확보에도 속도를 낸다. 우선 업계 주도 인력 양성 종합 컨트롤타워인 '반도체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반도체 협회가 운영하며 기업이 강사와 장비를 지원한다. 정부에서는 내년부터 2027년까지 국비를 지원, 5년간 3600명의 현장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한국형 SRC'도 설립한다. SRC는 미국 민관 반도체 연구 컨소시엄이다. 정부와 기업이 투자해 대학 R&D를 지원한다. 우리나라도 민관 합동으로 10년간 3500억원 규모 R&D 과제를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과 연계해 지원한다. 반도체 업계에서 요구하는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이 기증한 장비로 현장에서 양산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 환경도 마련한다. '한국형 아이멕(IMEC)'이 주인공이다. 아이멕은 벨기에의 종합 반도체 연구소로 세계 최고 수준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EUV 노광장비 등 첨단 장비 개발에 기여하고 있다.
국가별로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인재 유치 등 투자를 확대하는 만큼 고급 인력 유출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해외 엔지니어 등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세제 지원을 강화한다. 외국인 기술자와 내국인 우수인력이 국내 기업과 연구소에 취직 시 소득세 50% 감면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대폭 확대한다. 반도체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국내외 전문가 DB를 구축하고 해외 우수 인력과 국내 퇴직 인력에 대한 매칭을 지원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만에서는 해외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반도체 인력을 관리하고 자국 내 유치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서 “이번 DB 구축과 매칭 지원 정책으로 우수 인재가 떠나는 것을 막고 해외 우수 인재를 유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