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장관이 반도체 강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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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발사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새 역사를 쓰게 됐다. 상반기 최대 이벤트인 누리호 발사가 성공으로 방점을 찍으면서 잠시 미뤄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사와 조직 개편, 정책 행보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취임 40일을 넘긴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도 누리호 성공 이후 다음 할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 '소통'이다.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데 중요한 건 소통이다. 장관은 기업 비밀을 무기로 해서 싸우는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다. 정책은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투명하고 공개적이어야 추진력도 얻을 수 있다. 그동안 신임 장관의 행보를 보면 현장을 열심히 찾는 가운데에서도 우려되는 지점이 보인다. 이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 반도체공장 밀착수행에 이어 취임 후 첫 현장방문 일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을 선택했고, 국무위원과 국민의힘 의원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반도체 특강을 진행했다.

반도체 최고 전문가로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세계시장과 반도체 초격차 확보라는 특명을 받았다. 이 장관의 반도체를 알리려는 의지는 알겠다. 하지만 강연과 현장 방문 이외에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경쟁국과의 초격차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들은 적이 없다. 일각에서는 “장관이 반도체 강사냐”는 푸념까지 나왔다. 국무위원과 여당 의원이 알아야 할 반도체의 중요성이라면 기자를 넘어 모든 국민에게 공개 강연까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 장관은 산업계와 만남을 이어 가고 있다. AI, 디지털플랫폼기업, 소프트웨어(SW)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과학기술인을 만났다. 물론 현장 이야기를 듣는 것도 소통이다. 하지만 공개석상에서 핵심 현안에 구체적인 자신의 소견을 드러내고 토론하는 일은 보기 드물었다. 취임 40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장관의 정책 비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윤 대통령은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과 약식 브리핑을 한다. 국민 관심사를 파악하고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나오더라도 국민과 터놓고 소통하는 행보이다. 실제 윤석열 정부의 장관 대부분은 취임 2개월도 안 돼 정책 소견과 비전을 국민과 공유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정황근 농림축산자원부 장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을 비롯해 심지어 부처 폐지를 앞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도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장관은 사실상 처음으로 공식 브리핑대에 선 누리호 발사 성공 브리핑 현장에서 질문 3개를 받고 자리를 떴다.

과기정통부 2차관 임명이 지연되자 공직사회에서는 '장고이자 경고'라는 말이 나왔다. 혁신을 전담해야 할 부처가 혁신적이지 못하고 관료적이라는 비판 속에 '판'을 갈아 보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과기정통부의 내외부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누리호 성공 이후 할 일이 더 많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 소통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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