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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 박달조 박사(왼쪽)가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을 예방해 대화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새 술은 새 부대에, 최고 교수 모셔라.” 한국과학원(현 KAIST)은 이런 방침에 따라 미래 과학한국 인재를 양성할 교수 영입에 나섰다. 이상수 원장과 정근모 부원장도 백방으로 뛰었다. 당시 과학원의 지상과제는 최고 교수 유치였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교수 채용 기준이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높았다. 과학원은 학사 규정에 교수는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 실적과 교육경력 7년 이상, 부교수 역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 실적과 교육경력 3년 이상, 조교수는 박사학위 소지자로 자격 기준을 정했다.

학사 규정을 만들 때 내부에서도 채용 기준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과학원 초대 이사장인 안동혁 전 상공부 장관은 이런 의견을 일축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최고 교수를 초빙해야 최고 과학기술 두뇌를 양성할 수 있습니다.”

과학원은 국내외 과학자를 대상으로 교수 유치에 나섰다. 해외는 미국 내 학맥이 넓은 정근모 부원장이 이 일을 맡았다. 1971년까지 과학원 교수로 영입한 과학자는 조병하 박사(물리), 김호기 박사(화공), 전학제 박사(화학), 김길창 박사(전산), 전무식 박사(화학), 심상철 박사(화학), 나정웅 박사(전기), 윤덕용 박사(재료) 등이었다. 이들 가운데 김길창 박사, 심상철 박사, 나정웅 박사, 윤덕용 박사는 정근모 부원장의 권유를 받고 교수진에 합류했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탱크주의로 유명한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미국 MIT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잘나가던 그 역시 정 부원장의 권유로 귀국했다.

배순훈 전 장관의 증언. “이야기가 길어요. 처음 미국에서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세계 최초로 자동차엔진을 개발해 보자며 저와 정근모 박사, 이경서 박사 이렇게 세 명이 의기투합했어요. 정 박사는 해너 처장과 친했어요. 그런 와중에 한국과학원을 설립하게 됐어요. 정 박사가 부원장으로 부임하면서 기계과 교수로 함께 일하자고 해서 1972년에 귀국했습니다.”

초창기 교수 가운데 전학제 박사, 심상철 박사, 윤덕용 박사는 나중에 한국과학기술원장을 지냈다. 조병하 박사는 학사 규정과 학칙 제정 등 초기 한국과학원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무식 박사는 육각수를 최초로 발견한 물박사로 유명했다. 나정웅 박사는 30세 나이로 한국과학원에 전기·전자공학과를 만들고 1호 교수로 부임했다. 1989년에 그가 학생들과 개발한 전자파 지하 레이더로 제4 땅굴을 찾아낸 주역이다.

나정웅 당시 교수의 회고. “당시 미국 뉴욕공대에서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6개월 정도 지났을 겁니다. 정 박사가 과학원 부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함께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자고 권유해 귀국했습니다. 당시 심상철 박사도 함께 귀국했어요. 셋이서 귀국 이삿짐을 함께 싸서 배에 실어 보냈습니다. 귀국해서 전기·전자공학과 설립 타당성 조사연구를 하고 학과를 개설했습니다.”

한국과학원은 교수들에게 국내 교수들에 비해 많은 급여와 아파트를 제공했고, 해외 유치 과학자의 경우 귀국 경비 지급 등 다양한 형태의 처우를 제공했다. 한국과학원은 교수 모집 공고도 냈다. 그러자 7개 학과에 175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당시 국내에 물리나 화학 등 기초 과학자는 많았다. 반면에 과학원이 원하는 컴퓨터공학이나 산업공학 전공 과학자는 찾기가 극히 어려웠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컴퓨터 교육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정근모 부원장이 1970년 4월 14일 경제기획원 회의실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한국과학원 설립안을 보고할 때 박 대통령은 학생들에 대한 컴퓨터 교육 여부를 콕 집어 질문했다.

“앞으로 과학원 학생들에게 컴퓨터도 가르치나요?” “예,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당시 컴퓨터는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기술의 대명사였고, 과학기술자 양성에 필수 과목이었다. 세계적인 이공계 대학원을 지양하는 과학원에서 컴퓨터 교수를 찾지 못하면 과학기술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난감한 처지였다.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의 증언. “천신만고 끝에 미국 텍사스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항공우주국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던 김길창 박사를 만나 귀국을 설득했다. 그는 과학원 설립 취지를 잘 이해하고 전공인 컴퓨터가 미래 과학기술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971년 5월 귀국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컴퓨터 교육이 과학원에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했다.”(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정근모 부원장은 이어 아메리칸 캔 컴퍼니에서 간부로 일하던 이남기 박사를 산업공학과 교수로 초빙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KIST)에 근무하던 박송배 박사도 정 전 장관의 삼고초려를 받고 과학원 교수로 합류했다. 정근모 전 장관의 이어진 회고.

“한국과학원에 헌신한 교수 중 잊을 수 없는 분이 박송배 박사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오리건대 조교수로 일하다 1971년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과학원 초창기 나는 박송배 박사를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과학원 교수로 모셔 왔다. 박 박사의 전공은 전자회로였다. 전자회로는 전자공업과 산업현장에 기술혁명을 가져와 다양한 전자제품을 작고 싸게 만드는 길을 열었다. 박 박사는 과학원에서 전기·전자공학과 주임교수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박 교수는 과학원의 설립 정신에 투철했다. 기초가 단단했던 전기·전자공학과 학생들은 졸업 전 산업계에서 경쟁적으로 취업을 제안받았다.”

과학원이 1972년 2월까지 유치한 교수진은 10명이었다. 과학원은 그해 12월까지 16명의 교수를 유치하고 이듬해인 1973년에는 13명을 더 확보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같은 해 3월 11일. 한국과학원은 이날 임시 이사회를 열고 이상수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박달조 미국 콜로라도대 화학과 교수를 선임했다. 이 전 원장은 임기가 3년이었지만 14개월 만에 물러났다. 인사 배경을 놓고 분분한 해석이 나돌기도 했다.

인사와 관련한 과학기술처 관계자의 설명. “당시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의 소신을 반영한 인사였습니다. 최 장관은 과학원을 미국 MIT나 스탠퍼드대 같은 세계 일류 대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적과 무관하게 원장이나 교수진은 세계적인 과학자로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 최 장관의 소신이었습니다. 최 장관은 이런 의견을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보고했어요.”

신임 박 원장은 불소화학공업 연구의 개척자로 세계적 명성이 자자한 석학이었다. 교포 2세로,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화학회의 불소분과위원장을 겸임했고 불소학회의 국제 심포지엄 의장을 지낸 세계 화학계의 권위자였다. 이상수 전 원장은 이후 과학원 물리학과 교수로 후학을 지도했다. 그는 1989년 제6대 원장으로 3년간 재임했고, 정년 퇴임 후에는 명예교수로 재직했다.

같은 해 3월 21일. 과학원 이사회는 정기 이사회를 열고 일부 조직을 개편했다. 단일 부원장제를 학사담당 부원장과 행정담당 부원장의 복수 부원장제로 변경했다. 한국과학원은 3월 31일 행정담당 부원장에 문영철 과학기술처 기획관리실장을 임명했다. 교무 부원장은 각 학과와 연구실·도서실 업무, 행정 부원장은 행정실을 각각 관장토록 했다.

부원장 인사 발표 이튿날인 4월 1일 박달조 원장은 정근모 부원장으로부터 학교 교무 전반에 관한 현황을 보고받았다. 정 부원장은 과학원 설립 과정과 교수 임용, 교과 과정 편성, 학생 선발 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박 원장은 보고가 끝나자 감탄하며 말했다. “이처럼 완벽한 과학원 설계와 실행 계획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정 박사, 교무 부원장으로 계속 과학원 발전을 위해 헌신해 주시오.”

과학원은 1972년 5월 학생 기숙사를 완공했다. 연면적 2843㎡(860여평)의 기술사는 175명을 입주시킬 수 있었다. 과학원은 국립과학관 4층에 세 들어 있던 사무소도 6월 3일 학생 기숙사 건물로 이전했다. 6월 8일 이사회를 열고 학칙을 정했다. 개설학과는 이사회 의결대로 전기·전자공학과 등 7개 학과로 정했다. 학과마다 석사와 전문석사, 박사학위 과정을 두기로 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