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전기화 세상의 중심 'e-모빌리티'

Photo Image
명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원장

'e-모빌리티'는 화석연료가 아닌 친환경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해서 탄소배출 감축을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이동 수단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육상에는 전기차와 전기철도, 해상에는 전기추진 선박, 공중에는 전기추진 항공기와 드론이 있다. e-모빌리티 분야 기술·환경적 변화 이슈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엔진과 연비에 초점을 둔 자동차 기능 정의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및 융합기술 적용으로 달라지면서 나타난 기존 자동차 업체의 경쟁력 약화다.

둘째 배터리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기존 파워 트레인 성능이 구조적으로 달라졌고, 이로 인해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모터로 운행하는 친환경 운송 수단이 확산하고 있다. 셋째 자동차 부품 전장화, 자동차 동력원 전기화에 따른 기계 장비와 엔진 부품 비중의 감소다. 넷째 네트워크 속도와 대역폭 확대로 차량 간 차량(V2V)과 인프라 간 통신(V2I)을 넘어 모든 사물을 연결하는 지능형 네트워크 환경 확산이다.

다섯째 가정용 로봇부터 자율주행차까지 AI 소프트웨어(SW)를 탑재한 로봇이 모빌리티의 전기화, 스마트화, 커넥티드화 등 e-모빌리티 메가 트렌드를 견인하고 있다. e-모빌리티는 편리한 이동 수단을 넘어 삶의 편의성을 높여 주는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모빌리티와 전자제품의 산업 간 경계도 허물어지는 추세다.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제품 전시회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기업 GM의 회장이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기조연설을 했고, 전시회에 참가한 가전 전문기업 소니는 '소니 모빌리티'를 내세워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베트남 자동차기업 빈패스트(Vinfast)도 전시회에서 전기차 5종을 선보였다.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업종 간 경계는 허물어지고, 기득권 경쟁 우위가 사라진 무한경쟁 시대다. e-모빌리티는 친환경, ICT, AI, 빅데이터, 5G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전자제품으로 스마트폰 같은 혁신적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경제지 포천은 세계 e-모빌리티 시장 규모를 약 2300억달러로 추산하고 매년 27% 성장해 오는 2028년에는 1조50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래 국가 경쟁력은 e-모빌리티 핵심기술 확보와 시장 선점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e-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할 우수기업이 많고, 세계 시장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e-모빌리티 완성품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소재·부품 기술 자립과 경쟁력 강화는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의 '2030년 미래자동차 산업발전 전략'에 따르면 우리나라 e-모빌리티 환경에서 통신 인프라는 우수하지만 소재·부품 기술 역량은 선진국의 77% 수준에 그쳤다. 차량용 반도체나 센서도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실정이다.

e-모빌리티 핵심 소재·부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배터리를 꼽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2025년까지 배터리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해 주행거리(600㎞), 에너지효율(7㎞/㎾h), 충전 속도(80% 충전에 20분)라는 배터리 3대 핵심 성능을 최고 수준으로 확보하겠다는 로드맵을 수립하고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지원사업에는 기존 리튬이온전지 기술 고도화 외에 고체전해질 소재를 적용한 전고체 전지 고안정화 및 장수명화, 리튬-황전지를 활용한 고에너지 밀도화 기술 등이 포함돼 있다.

Photo Image

차량용 반도체도 핵심 소재·부품이다. 최근 세계적인 수급난으로 주목받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는 e-모빌리티 완전 자율주행을 실현할 전장부 핵심부품이다. 현재 레벨 2.5 반자율 주행에서 향후 이동체 간 통신과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하려면 레벨4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고성능 차세대 탄화규소(SiC) 반도체 설계·제작·패키징 기술의 국산화가 선행돼야 한다.

액추에이터를 포함해 각종 센서, 원활한 5~6G 통신 지원 안테나, 압전·광전·열전소자, 고속 통신용 저유전 PCB 등도 완전 자율주행 e-모빌리티 구현에 필요한 소재·부품이다. 이외에 형상에 구애받지 않는 투명 유연 소재, 정교한 형상 디자인 및 스마트 기능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3D·4D 프린팅 기술 등이 고부가가치 e-모빌리티 소재·부품 관련 기술로 꼽힌다.

작고 튼튼하며 효율성이 높은 안전한 e-모빌리티를 구현하기 위한 절연 분야 소재·부품도 주목받고 있다. 모터 부품, 초고속 모터 베어링, 커패시터용 박막필름 소재, 과전류 억제용 고압 릴레이, 고속통신용 커넥터 부품, 전자파 차폐 및 흡수 필름, 차량 전장부품 간 케이블 등도 국산화해야 할 품목이다. 최근에는 탄소나노튜브·그래핀 같은 탄소계 나노소재와 자성금속·세라믹 소재 융·복합화를 통해 소재·부품 기능성을 높이는 연구, 전자파 간섭 및 발열에 따른 부품 오작동 피해를 최소화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이 같은 융·복합 및 안전성 연구는 전장부품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고 개발 기술을 차별화할 수 있다.

경량 소재도 e-모빌리티 산업 경쟁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기술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내연차보다 20∼30% 더 무겁다. 주행거리를 늘리고 연비를 개선하려면 배터리 자체 경량화 외에 내외장 부문에서 경량 소재 개발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기존 금속 소재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섬유복합 소재로 대체하는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탄소섬유나노복합 프레임 배터리 개발을 통해 차량용 구조체 전지 시스템 실용화도 추진하고 있다.

e-모빌리티용 구리 도체를 알루미늄으로 대체하는 기술, 고전도성 탄소나노튜브 기반 비금속 도체 개발로 도체 무게를 5분의 1 수준까지 줄이는 도체 경량화 기술 등이 중장기 도전적 연구과제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 여러 SF영화는 21세기에는 개인마다 휴대폰을 사용하고, AI 로봇이 서비스하고, 앉아만 있어도 자율주행하는 차를 묘사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미래 신기술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꿈의 e-모빌리티라 불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과거 한때 비현실적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모두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기술이라 예상한다. 신기술 개발은 우리가 예측한 것보다 더 빠르게 구현되고, 그만큼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미래 인류의 삶을 좌우할 e-모빌리티 기술과 산업 변화에 대응 없이 지켜만 본다면 국가 경쟁력은 그만큼 뒤처질 것이 자명하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 분야는 더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인류의 염원인 깨끗하고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줄 e-모빌리티 산업 발전을 정부의 확실한 제도적 지원, 투자 강화, 과감한 규제 완화 등을 기대한다.

명성호 한국전기연구원장 shmyung@keri.re.kr

<필자> 명성호 원장은 친환경 전기에너지 분야 전문가다. KERI에서 38년간 근무하면서 '765kV 초고압 송전선로 상용화 기술' '송전선로 전자파 친환경 기술' '한국형 고속철도 전자파 대책 기술' 등을 개발했다.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신재생에너지 품질 향상 및 차세대 전력망 기술 개발을 총괄했다. KERI 전기환경송전연구그룹장, 차세대전력망연구본부장, 미래전략실장, 연구·시험부원장 등을 지내면서 원내 연구 역량 강화를 이끌었다. 대외적으로 △국제대전력망회의(CIGRE) 전기환경 부문 한국대표 △한국전력 열린경영위원 △한국에너지학회 이사 △대한전기협회 한국기술기준위 위원 △한국전기산업진흥회 운영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