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인수위는 윤 당선인의 취임 하루 전인 5월 9일까지 50여일 동안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밑그림을 그린다. 인수위 활동에 시동이 걸리면서 각 업계가 저마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벤처·스타트업 업계의 요구사항은 '창업하기 좋은 나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창업가가 기업가정신을 갖고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택시업계와 충돌한 '타다'부터 '로톡' '강남언니' 등의 사례를 보면 기존 산업과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혁신은 언제나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는 관성에 반발을 사기 때문에 낡은 것을 밀어낼 수 있는 각오가 정부에도 필요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규제와 법 앞에서 멈춰선 혁신가에게 힘을 주는 건 정부의 역할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자동차의 등장으로 마부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자 자동차 속도를 제한한 '레드 플래그법'이 2022년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기회를 놓친 19세기 영국을 비웃듯 미래의 누군가가 2022년 대한민국을 조롱할지도 모를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창업하기 좋은 나라는 '엑시트'(EXIT)하기 용이한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신사업을 개척한 뒤 인수합병(M&A)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선순환을 구축하는 게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다. 이른바 '연쇄창업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M&A 기업에 법인·소득세 감면, 고용 유지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창업자에겐 주식양도세를 면제하는 등 벤처기업 M&A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 벤처투자자는 투자를 결정할 때 사업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창업가와 팀을 본다고 한다. 대외적인 변수들로 인해 사업이 바뀔 수도 있지만 '사람'이 확실하다면 다른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혁신 DNA를 가진 창업가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도 정부 책무 중 하나다.
벤처업계의 숙원인 '복수의결권' 도입도 빼놓을 수 없다. 복수의결권제는 벤처·스타트업 창업자가 투자 유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분 희석으로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지는 것을 막아 준다. 현재 관련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제동을 걸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복수의결권 도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2 벤처 붐'이라고 한다. 매월 1조원이 넘는 돈이 벤처·스타트업에 투자된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거부하고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만나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이 분다. 문재인 정부의 배턴을 이어받은 윤석열 정부는 '연쇄창업자의 나라'를 꿈꾸면 어떨까.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