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신차 구매 시 '내비게이션'을 빼면 한 달 내 출고를 지원하는 특단책을 내놨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납기 일정이 최장 16개월까지 길어진 데 따른 것이다. 1월 말 불거진 '내비게이션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결품 사태의 후속 대책이다.
3월 기아 전 차종 생산 및 납기 일정 자료에 따르면 K3, K5, K8, 셀토스, 스포티지, 쏘렌토 등 주요 차종 계약 시 내비게이션을 제외하면 1개월 안에 차량을 받을 수 있다. 특정 반도체가 필요한 품목을 제외하는 이른바 '마이너스 옵션' 방식 생산 대응이다.
회사는 영업 일선에 “전 차종 내비게이션 MCU 부족으로 인한 공급 차질로 납기가 지연되고 있다”면서 “내비게이션 미적용 사양으로 생산 대응, 납기를 단축할 수 있다”고 공유했다. 내비게이션을 뺀 자리는 디스플레이 오디오나 콤팩트 오디오가 대체한다.
대표적으로 기아 경차인 모닝과 레이는 내비게이션을 선택하면 출고까지 넉 달이 소요되지만 제외하면 한 달 반 안에 차량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신차에서 기본 품목이나 다름없는 내비게이션까지 빼는 것은 그만큼 특정 반도체 수급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동안 마이너스 옵션은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수입차가 열선 시트 등 일부 품목에 적용했던 판매 방식이다. 이보다 앞서 기아도 K8 등 일부 차종 계약 시 마이너스 옵션을 제시했으나 스마트 주차 보조 기능처럼 고객 수요가 낮거나 중요하지 않은 품목에 한정했다.
업계는 올해부터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순차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봤으나 고객에게 인도되는 납기 일정은 오히려 길어지고 있다. 이달 기준 기아 전 차종의 납기 일정은 전달보다 평균 1~2개월 늦어졌다. 기아 차종 가운데 대기가 가장 긴 스포티지·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전달 14개월에서 16개월로 두 달이나 길어졌다. 전기차인 EV6는 15개월 이상, 전달부터 출고를 시작한 신차 니로 하이브리드는 11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현대차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달 계약 기준으로 신차인 제네시스 G90는 출고까지 10개월 이상, 전기차인 아이오닉 5와 GV60는 12개월 이상 소요된다.
예상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될 수 있단 우려도 커진다. 글로벌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작년부터 차량용 반도체를 1년치 이상 선주문하면서 실제 납품까지 소요 시간인 '리드타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작년 말 기준 업체들의 차량용 반도체 누적 주문량이 올해 생산능력을 20~30% 초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