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단일 품목으로 매출 1조원을 거두는 국산 '블록버스터 신약'이 연내 탄생할지 주목된다. 제약사들이 사활을 건 신약들이 대거 등판을 준비 중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 판매허가를 준비하는 후보물질들이 가장 블록버스터 신약에 근접했다. 한미약품, 유한양행, 메지온 신약이 올해 FDA 허가를 대기 중이다.
◇한미약품·유한양행, 치료제 마땅치 않은 비소세포폐암서 '블록버스터' 도전
한미약품과 유한양행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에서 도전한다. FDA 허가를 받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가 극소수라 승인만 받는다면 1호 국산 블록버스터 신약 자리를 예약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 파트너사 스펙트럼은 지난해 12월 FDA에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포지오티닙' 신약시판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 이후 신속심사대상(패스트트랙) 지정을 받는 등 허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포지오티닙은 2015년 한미약품이 스펙트럼에 기술수출한 신약후보물질이다. '치료 경험이 있는 국소 진행 및 전이성 HER2 Exon 20 삽입 변이가 있는 비소세포폐암(NSCLC)'이 적응증이다.
지난해 마무리한 임상 2상에서 포지오티닙을 투여한 전체 환자 90명 중 74%가 종양이 줄어들었다. FDA가 해당 적응증에 판매를 허가한 치료제는 아직 없다. 업계는 포지오티닙이 FDA 허가를 받으면 글로벌에서 약 3조원 규모 수요가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유한양행은 글로벌제약사 얀센을 통해 '레이저티닙' FDA 허가에 도전한다. 레이저티닙은 유한양행이 국내 혁신신약 기업 오스코텍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유한양행은 2018년 얀센에 약 1조4000억원 규모로 레이저티닙을 기술수출했다. 얀센은 지난해 FDA 혁신신약으로 신속승인을 받은 자사 표적항암제 리브레반트(물질명 아미반타납)와 레이저티닙을 같이 쓰는 병용요법을 추진 중이다.
레이저티닙은 이미 지난해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 조건부 허가를 득해 '렉라자'라는 이름으로 국내 시장에 출시됐다. 국내 판매가 시작됐고, 병용요법에 쓰이는 리브레반트가 혁신신약으로 미국 내 신속승인을 받은 만큼 복합제 역시 FDA 허가 기대를 높이고 있다.
레이저티닙은 'EGFR(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TKI로 치료받은 적이 있는 EGFR T790M 변이 양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에 쓰인다. 현재 해당 적응증으로 판매허가를 받은 약은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가 유일하다. 타그리소 연 매출은 지난해 기준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얀센이 레이저티닙을 활용해 개발 중인 복합제는 타그리소와 다른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라면서 “치료 옵션을 늘릴 수 있고, 좀 더 많은 변이에 대응할 수 있어 (타그리소를 뛰어넘는) 다음 세대 약물로 보고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첫 번째 바이오신약 '롤론티스'도 FDA 허가를 준비 중이다. 한미약품 독자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장기 지속형 바이오신약으로 치료 주기 당 1회만 투여하면 되는 약물이다. 한미약품 파트너사 스펙트럼은 1분기 안에 '롤론티스' BLA(품목허가신청서)를 FDA에 제출할 계획이다.
랩스커버리는 약물의 생체 내 지속성을 늘리는 기술로 반감기가 짧은 바이오 의약품 단점을 극복한다. 한미약품은 자사 파이프라인 10여종에 랩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해 개발하고 있다. 롤론티스가 FDA 허가를 받으면 신약뿐 아니라 플랫폼 기술에서도 경쟁력을 인정 받는 셈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연내 포지오티닙, 롤론티스 FDA 허가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두 종의 신약이 빠르게 허가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블록버스터 신약 후보군, 특이질환에 몰려…니치버스터로 전략 전환 성과
올해 FDA 승인을 기다리는 국내 제약바이오사 신약은 모두 특이질환나 희귀병을 적응증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미약품과 유한양행이 노리는 비소세포폐암도 폐암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환자가 적은 틈새시장에서 시작해 적용대상을 넓혀가는 이른바 '니치버스터'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3월 안에 FDA 허가 여부가 결정나는 메지온의 폰탄(단심실증) 치료제 후보물질 '유데나필'이 대표적이다. 유데나필은 단심실증 수술 후 혈관 확장에 사용하는 약으로, 아직 FDA 판매허가 사례가 없어 블록버스터 신약 후보 중 하나다. 폰탄치료제 예상 시장 규모는 2조8000억원 규모다. 얀센이 최근 폰탄 치료제 개발을 중단해 경쟁자도 없다. FDA는 3월 안에 유데나필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에이치엘비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 역시 니치버스터 전략을 취한 신약 후보 중 하나다. FDA는 지난해 리보세나립을 간암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했다. FDA는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한 신약에 대해 임상시험 승인이나 허가 기간을 단축해 준다. 업계 관계자는 “연내 승인까지는 어렵지만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한 만큼 FDA 지원을 받아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신약 개발에 필요한 투입 비용과 시간이 점점 늘면서 글로벌 빅파마는 물론 국내 업계도 수년 전부터 특이질환용 치료제를 먼저 개발해 점차 적응증을 넓혀가는 전략으로 전환했다”면서 “국내 업계도 이제 업력과 기술이 쌓인만큼, 작은 분야에서 치료제를 선점한다면 향후 세계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갖는 신약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