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료가격 상승 인정했지만
물가 안정 이유로 유보권 발동
정부가 새해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유연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비가 상승했지만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했다. 에너지 전문가는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유보권으로 '원가연계형 전기요금 체계'가 유명무실화됐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20일 2022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발표하고 올해 4분기와 같은 ㎾h당 0원으로 조정됐다고 밝혔다. 한전은 원료비 상승분을 감안해 새해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3.0원으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정부에서 유보권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는 올 4분기와 같은 연료비 조정단가가 적용됐다.
정부는 전기요금 원료 가격이 상승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전기요금을 동결했다고 한전에 통보했다. 정부는 유보권 발동 사유로 “국제 연료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영향으로 2022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 요인이 발생했다”면서도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를 도입한 이후 이뤄진 다섯 차례 연료비 조정에서 세 차례 전기요금 유보권을 발동했다. 두 차례 반영된 연료비 조정단가 가운데 한 차례는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조치여서 실질적으로 연료비 상승분을 반영한 것은 한 차례에 그친다. 세계적인 연료 가격 상승으로 원료비가 급등했지만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연료비 변동분은 실적연료비(직전 3개월 동안의 평균 연료비)와 기준연료비(직전 1년 동안의 평균 연료비) 차액으로 산출한 '연료비 조정단가'로 결정된다. 연료비 조정단가가 정상적으로 조정되지 못하면서 한전 재무구조는 누적된 원료비 상승 영향을 견뎌야 한다. 한전에 따르면 새해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는 2019년 12월에서 지난해 11월까지 기준연료비의 ㎏당 289.07원 대비 실적연료비가 178.05원 상승한 29.1원으로 산정됐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유연탄, 액화천연가스(LNG), 벙커씨(BC)유 무역통계가격에 따른 1분기 실적연료비는 ㎏당 467.12원으로 기준연료비 대비 61.6% 상승했지만 이를 반영하지 못한 셈이다.
정부가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를 사실상 '장식용 제도'로 만들면서 한전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우리나라 에너지산업 투자 동력도 약화할 것으로 진단됐다. 누적된 연료비 상승분이 내년에도 한전에 악영향을 미치고 발전공기업까지 연쇄적으로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올해 한전은 4조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되고, 총매출액의 5%는 이미 신재생에너지 의무 도입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면서 “한전이 적자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데 전력구입비까지 조정하면 발전공기업과 전력산업 생태계가 취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외국에서는 민간 전력판매 회사가 연료비 상승분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까지 했다”면서 “(이 같은 사태가 지속되면) 전력공급 안정성이 훼손되고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한국전력 연료비 조정단가 산정내역(실적연료비·기준연료비는 ㎏당, 연료비 조정단가·결과는 ㎾h당)
*기준연료비는 2019년 12월에서 2020년 11월까지 평균.
자료:한국전력공사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