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의 전자문서와 정보화사회]〈23〉한국형 디지털 서비스의 패러다임 전환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교역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정책은 거대한 단일 시장 형성을 목표로 한다. 그 가운데에는 데이터 표준화를 통한 디지털 단일 시장도 포함된다. 디지털화가 EU 회원국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경제 패러다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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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회원국을 비롯해 EU와 교역하는 각 국가 기업은 디지털 환경을 위한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전자신원확인 및 신뢰서비스 규정(e-IDAS) 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EU 산하기구 CEF(Connecting Europe Facility)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인프라 체계 프로젝트다. CEF는 회원국 간 물류·에너지·디지털 등 3개 영역의 인프라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와 이에 필요한 기금 조달을 담당한다. 이 가운데 디지털 서비스 인프라 프로젝트는 회원국이 디지털 제반 사항을 원활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전자신원확인체계(eID), 전자서명(eSignature), 전자배달(eDelivery)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EU 권역 내 디지털 거래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EU 디지털 싱글 마켓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서비스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우수한 인터넷 인프라와 전자정부, 디지털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정책 및 법률 등이다. 특히 전자적 신원확인이나 전자서명, 전자문서 유통 등 제도는 EU보다 먼저 정착됐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인프라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디지털 환경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형 디지털 서비스의 한계와 개선 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보화 발전은 주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각종 정책 및 지원 수단을 강구하고, 기업이 이를 각종 기술 및 솔루션을 연구개발(R&D)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정보화 중심이 기술에서 서비스로 전환되는 현시점에서 이 방식은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한 예로 공인인증서는 전자서명법에 의해 마련된 제도로, 우리나라의 전자 거래에 많이 이바지한 건 사실이지만 국내에서만 활용되고 세계 시장으로는 확산하지 못했다.

반대 사례도 있다. 글로벌 전자서명 시장은 민간 중심 기업이 정부보다 앞서 시장 요구 사항을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최신 기술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서비스 품질 향상을 이뤄 서비스가 세계 시장으로 확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이제는 전자서명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자서명법 개정으로 민간의 자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인증 표준을 준용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관련 기업의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서명법은 한국에서 선도적으로 정착시킨 제도이며, 정보화 발전에 도움을 준 것은 긍정적인 성과다. 그러나 기술 세부 사항까지 규정한 것은 민간 기술 발전 측면에선 제약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사회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기술 지향적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민간이 주도하는 디지털 서비스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한다. EU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는 큰 틀에서만 원칙을 제시하고, 산업계는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가 창출되고, 기술 발전 역시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시장 진출이라는 또 다른 성과도 얻을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서비스 모델과 사업성이 검증되면 국가 간 서비스 연계, 나아가 해외 국가의 서비스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면 다수 국가가 동일한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국가 간 디지털 싱글마켓이 조성된다.

그러기 위해선 디지털 서비스 중심으로 기업 간 협업 및 생태계 형성이 가능해지도록 정부가 간접적 정책으로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 서비스가 정착되면 EU에서 추진하는 국경 간 디지털 싱글 마켓과 같이 인근의 아시아 국가와 공동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교역은 실제 상품 거래와 더불어 디지털 재화를 거래하는 시장도 크게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디지털 서비스 기반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져서 이를 글로벌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지속해야 할 것이다.

김성규 한국전자문서산업협회장 gform@eposto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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