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순수지주회사로 출범하지만 필요한 경우 새로운 성장 사업이나 해외에 지주가 직접 투자하는 것도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4년 전 롯데지주 출범식에서 당시 가치경영실장이던 임병연 부사장이 한 말이다. 롯데지주의 사업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열어 뒀으며, 지주가 직접 나서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그룹 체질 개선을 주도하겠다는 의지였다. 수년이 지났지만 롯데지주는 여전히 계열사 관리라는 소극적 역할에 머물러 있다.
롯데가 지주사를 만든 주목적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과 일본 롯데와의 완전한 분리를 이루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잇단 외부 변수로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상장이 미뤄지면서 아직 미완의 지주사로 남았다.
선단식 경영 체제에서 롯데지주 역할은 계열사 경영평가와 자문, 브랜드 라이선스 등 관리자 역할에 그쳤다. 실제 롯데지주의 올해 2분기 전체 이익 가운데 69.5%는 상표권 수익이다. 나머지도 경영지원과 임대 수익이다. 1분기에는 전체 수익의 75%를 배당 수입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그룹 내부에서도 지주사의 새로운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계열사는 독립경영 체제에 맡기고 지주사는 신규 먹거리 확보를 위한 외부 투자, 인수합병(M&A) 등 투자 선봉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지주사가 직접 사업부를 거느리는 사업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롯데는 최근 한샘 인수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수년간 M&A 시장에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성장 동력 발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크게 휘청거렸다. 지주사 차원에서 미래 유망사업 발굴을 위한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SK, LG 등 다른 그룹의 지주사들은 이미 투자형 지주사로 역할을 전환하고 있다. 롯데지주 역시 투자 전진기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올해 들어와 헬스케어, 바이오팀 등 신사업 전담 조직을 꾸리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튼튼한 수익구조를 만들려면 계열사와 시너지에 얽매이기보단 기존 사업과 결이 다르더라도 새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