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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KAIST 한국4차산업혁명정책센터장

몇년 전 제조 빅데이터·인공지능(AI)·슈퍼컴퓨터 센터 구축 사업 기획연구를 진행할 때 받은 질문이다. 질의자는 이런 사업이 당장 1억원조차도 회사 서버 구축에 쓰기가 어려운 중소 제조기업에 도움이 되는지를 궁금해 했다. 실제 중소기업 현황 자료를 살펴보고 현장 방문을 하니 충분히 공감됐다. 그렇지만 최근 AI 바우처 사업 경쟁률을 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AI 바우처 사업은 AI 제품이나 서비스가 필요한 중소기업과 이를 보유한 전문기업을 연결하는 일종의 중개 사업이다. 지난해 처음 도입된 AI 바우처 사업은 1차 모집 때 2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정도 규모의 수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 가려운 곳을 긁는 사업임에 틀림이 없다. 실제로 335개 기업이 신청한 최초 사업 후 참여한 기업의 만족도가 높아 추경예산으로 하반기에 추가 사업이 열렸는데 여기에는 훨씬 더 많은 475개 기업이 지원했다.

주지하다시피 4차 산업혁명의 도화선은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퇴임하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다. 제조업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해서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생산시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지능화하는 스마트 공장을 통해 퇴락하는 전통 제조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정책이다. 이후 제조만이 아니라 서비스·노동관계 등 지능화 영역이 넓어지고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전 영역의 물리와 생명, 디지털 세계 통합이라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서버 구축에 1억원조차도 투자가 어렵다는 우리 중소기업이 어떻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AI를 도입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고가의 AI 서비스를 도입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에 AI 전문기업을 연계해서 해당 중소기업이 필요한 AI 솔루션 구입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차라리 여타 사업처럼 그냥 연구개발(R&D)비를 지원하거나 조세 혜택을 주면 되지 않나 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러면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을 중개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수고를 줄일 것이고, 중소기업 역시 자체 AI 역량이 늘 것이 아닌가.

바로 여기에 AI 바우처 사업의 묘미가 있다. 성공학 교과서라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는 급한 것보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하라고 한다. 개인이나 기업은 중요한 것보다 급한 것을 먼저 하게 돼 있다. 1억원이 아쉬운 중소기업 입장에서 연구비를 받든 세제 혜택을 받든 AI 솔루션을 자체 개발한다는 것은 급한 것을 놔두고 중요한 것을 먼저 하라는 얘기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바우처'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바우처란 해당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현물 지원이기 때문에 현금처럼 급한 데가 아니라 중요한 데 쓰게 된다.

한편 AI 솔루션 공급기업에도 바우처 사업은 매력적이다. 그동안 AI 서비스 개발에 뛰어든 수많은 스타트업의 공통된 고민이 판매였지만 바우처 사업을 통해 적절한 판로를 개척하고 대규모 투자까지 받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AI 바우처 사업 선정 사례를 보면 반도체 칩 결함 자동검사, 용접 불량 진단, 치과 보철물 제작, 치매 진단, 차량 외관 훼손 진단, 스크린도어 사고 감시, 패션 코디, 개인 맞춤형 복약·운동 추천 등 산업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료·안전 등 전 분야에 걸쳐 매우 다양한 사업 아이템에 AI 영상분석 기술·추천 알고리즘 기술 등이 적용되고 있다.

치매 진단의 경우 30년 후 치매 환자가 4배 증가하고 치료 비용도 현재 환자 1인당 약 1200만원에서 2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AI를 활용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치매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은 바우처 사업 참여 기업의 성과만이 아니라 세계 최고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미래와 직결된다.

올해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국내 기업체의 AI 실태 조사를 보면 AI 기술 도입 기업체 대부분이 AI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AI를 갖춘 기업 소프트웨어(SW)를 활용한 것이고, AI 기술 도입이 매출액 증가 등 경영 성과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I 도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기업 수요에 맞는 AI 솔루션 부족'을 들었다. 이처럼 AI 바우처 사업이 현장의 요구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과연 AI라는 구슬이 우리나라에 서 말이라도 되는가? AI 바우처 사업에 지원하는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AI 생태계라는 보배를 꿰맬 서 말이 보인다.

김소영 KAIST 한국4차산업혁명정책센터장 soyoungki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