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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5월. 일본은 명을 치러 가니 길을 안내하라는 '정명향도'(征明嚮導)를 빌미로 조선을 침공했다. 임진왜란이다. 일본이 2019년 7월 우리나라를 상대로 단행한 수출 규제는 여러 면에서 임진왜란과 닮았다. 우리 측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일방으로 조치한 것은 물론 기습 침략으로 개전 20일 만에 한양을 함락한 것처럼 이번에도 기습 규제로 양국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려 했다.

우리나라는 이로 인한 위기에서도 지난 2년간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일본 정부가 지정한 3대 품목의 대일 의존도를 크게 줄였다. 100대 핵심 품목도 속속 국산화와 대체품 확보에 성공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관군과 의병이 함께 사투를 치른 것처럼 우리 민·관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에 힘을 모은 덕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이 제기한 수출관리체계에 있는 문제를 모두 해소했다. 하지만 일본은 지속적으로 수출 규제를 철회하라는 우리 측 요구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 측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측 경제산업성의 수출 관리 정책 대화도 작년 3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우리나라는 지난 2년간 소부장 산업에서 괄목할 자립화 성과를 거뒀다. 안심하기는 이르고 가야 할 길은 멀다. 일본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데다 자국우선주의 확산에 따라 각국이 소부장 기술 경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한 일본 공사의 막말 파문, 정상회담 무산 등 극도로 경색된 한·일 관계를 감안하면 일본이 추가 규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정유재란'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은 조선과의 정전회담이 결렬되자 1597년 8월 14만 대군으로 재차 공격에 나서며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아직 일본의 수출 규제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 산·학·연·관이 '소부장 정유재란'을 막기 위한 기술 자립화에 한층 고삐를 당겨 주기를 바란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