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만기친람(萬機親覽)과 OTT 영상 등급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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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정부가 지난해 6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산업 발전을 위해 마련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 방안'에서 최소규제 원칙에 따라 자율등급분류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영상물 등급분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제29조(영화)와 제50조(비디오물)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콘텐츠에 대한 영상물 공공성 및 윤리성을 확보하고 청소년을 유해 매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다. OTT사업자의 주문형비디오(VoD)도 여기에 해당한다.

등급분류는 영상물 심의와 검열 논란 때문에 도입됐다. 영화 심의는 지난 1962년 1월 영화법에서 도입됐으나 심의 주체와 관련한 검열 논란이 지속되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1997년 4월 영화진흥법에 상영등급이 도입됐다. 주체는 공연윤리위원회, 공연예술진흥협의회를 거쳐 영등위로 바뀌었다.

또 비디오물 사전심의도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 폐지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대신 1999년 2월에 제정된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에서 등급분류가 도입됐다. 다시 2006년에 현재의 영비법으로 대체됐다.

헌재는 2007년 10월 등급분류는 사전결정 절차가 아니라 비디오물 발표나 유통으로 인한 실정법 위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비디오물 유통으로 말미암아 청소년이 받게 될 악영향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공개나 유통에 앞서 이용 연령을 분류하는 절차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청소년이 시간이 흘러서 이용 가능한 나이가 되면 해당 비디오물 접근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표현물 공개나 유통 자체를 사전적으로 금지, 시간이 지나도 이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전 검열과 다르다고 판시함에 따라 현행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유례없는 코로나19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옛날 임금이 온갖 업무를 친히 돌보던 '만기친람'과 유사한 영상 등급분류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OTT 활성화로 이용자 요구는 시시각각 변하고, 사업자는 변화 속도와 가입자 수요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수급해 적기에 공급하고자 한다.

자율등급분류제는 이보다 앞서 2016년 5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도입됐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폭력성·선정성 등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목적으로 도입한 사전등급분류 제도는 새로운 플랫폼 등장으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간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율심의제도를 도입하고, 그 대신 해당 사업자에 대한 교육과 사후관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결정했다.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전략상 OTT에 대한 자율등급분류제 도입의 취지와 정확하게 들어맞는 상황이다.

또 OTT 등장으로 과도해진 영등위 업무를 덜어 주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2017년 영상물 등급분류 연감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2016년 당시 비디오물 등급분류는 6580편으로 전년 대비 51.6%, 영화는 2147편으로 27.8% 각각 증가했다.

심사 분량이 확연히 늘어났다. 영화·비디오 등급분류 소위원회가 인원을 증원했지만 현재 웨이브·티빙·왓챠·시즌·쿠팡플레이에다 올 하반기에 디즈니플러스까지 출시되면 영등위 업무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영상물 자율등급분류 대상을 정할 때 상영·수입 이력이 있는 영화 등급분류와 관련한 법제처의 유권해석 사례를 적극 참조할 필요도 있다.

법제처는 “상영등급은 영화 자체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므로 영화 내용과 상영등급 분류 기준이 동일하다면 같은 내용의 영화를 누가 수입했는지, 등급분류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매체도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영화 내용에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등급분류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같은 취지에서 이미 등급분류 심사를 받은 영상물을 플랫폼 등 매체만 달리해서 수입하는 경우 등급분류를 다시 받을 필요가 없도록 하고, 기존 등급분류를 받은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내용을 축소한 편집·홍보 영상은 등급분류 심사에서 제외하는 등 영등위와 사업자 모두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문체부에서 OTT 자율등급분류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서두른다고 한다. OTT 산업 발전을 위한 빠른 입법을 기대한다.

이수경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sgyi@yoon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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