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로마제국의 113개 속주를 연결하는 총 40만㎞의 372개 도로망은 로마제국 확장에 핵심적 기능을 수행했다. 1800년대 후반 건설된 미국의 동서를 연결하는 5개 철도 라인은 서부 개발과 미국 산업 발전의 근간이 됐고, 1970년 준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했다. 로마시대부터 산업화시대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교통망의 확보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였다.
물리적으로 제공되던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디지털 경제의 도래와 함께 국가 발전에 있어서 디지털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산업화 시대 교통망의 중요성에 비견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전자상거래의 확대, 동영상 기반 사회관계망 서비스와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등의 수요 확대로 데이터 사용량은 폭증하고 있다. 시스코의 정보망시각지수(VNI)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 트래픽은 2017년부터 매년 26% 증가, 올해 말에는 3.3제타바이트(ZB)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우리나라의 1분기 데이터 트래픽이 전년 동기 대비 45.6% 증가된 것을 고려하면 실제 올해 세계 데이터 트래픽 규모는 시스코의 예측을 크게 상회하는 4ZB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폭증하는 트래픽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서는 네트워크 고도화를 위한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촉진하기 위한 네트워크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디지털 네트워크 고도화는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자로 하여금 기존 서비스의 안정적인 이용과 함께 새로운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제공하고, 공급 측면에서는 새로운 네트워크와 장비 구축을 통해 고용 창출 및 신규 서비스 보급을 통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게 된다. 특히 다른 나라에 앞선 고도화된 네트워크 구축은 관련 기업들에 시장 선점 기회를 제공해서 국내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 1999년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에 기반을 둔 세계 최초의 초고속인터넷서비스 보급은 국내 통신서비스 고도화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해서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포털사업자,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게임 기업 성장 기반이 됐다. 또 2019년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의 세계 최초 상용화 등 모바일 환경에서의 디지털 네트워크 고도화는 모바일 기반의 플랫폼 서비스, 게임 산업 등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한편 우리나라 스마트 폰과 통신 장비의 세계 경쟁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라 네트워크 고도화가 자동차, 물류,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른 산업 분야의 경쟁력 확보에 미치는 영향도 증대되고 있다. 경제 전반에 대한 디지털 네트워크의 긍정적 외부효과가 네트워크 고도화와 더불어 증대되면서 디지털 네트워크 고도화는 경제 전체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기반 인프라 고도화라는 의미를 띠게 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가 5G 네트워크 투자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특정 지역의 건물이나 공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5G 특화망을 허가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경쟁 국가에 앞선 5G 전국망 구축과 5G 기업용(B2B)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28㎓ 대역망의 조기 구축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5G 투자세액 공제의 추가 확대, 합리적 주파수 사용대가 산정 등 더 적극적인 정책적 고려가 요청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네트워크는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을 넘어 디지털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wonki.min@suny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