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08곳 중 110곳 실적 '전무'
사업 내용 미공시도 81곳 달해
정부 관리 안돼 과반이 개점휴업
상당수 '보조금 브로커'로 악용
국내 액셀러레이터의 절반 이상이 지난해 단 한 건의 투자도 없이 개점 휴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도입 5년 동안 300개 이상의 액셀러레이터가 등록했지만 상당수는 정부 보조금을 따내기 위한 창업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이름만 내건 경우가 허다하다. 보육·투자실적 공시 의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관리·감독 없이 단순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한 결과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14일 전자신문이 창업기획자 전자공시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에 등록된 308개 액셀러레이터 가운데 110개사는 지난해 투자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내용을 공시하지 않은 액셀러레이터도 81개사에 이른다. 전체 등록 액셀러레이터 가운데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38%만이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투자 단계 안팎으로 이뤄지는 보육 업무 역시 엉망이다. 보육 실적이 전혀 없는 액셀러레이터가 140개사다. 겸영 창업투자사 등 실무적 이유 등으로 개별 멘토링 실적을 공시하지 않는 사업자를 감안해도 수가 적다. 업계는 등록된 액셀러레이터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사실상 활동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액셀러레이터는 법적으로 초기 창업자의 선발 및 전문 보육과 투자를 수행하는 창업기획자를 의미한다. 지난 2017년 제도 도입 이후 5년도 지나지 않아 300개를 돌파했다. 점차 대형화·다각화하는 벤처투자 시장에서 초기 창업자를 전문으로 발굴·육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업계 관계자는 “낮은 기준으로 여러 주체에게 자격을 열어 주면서 과거 정부 보조금을 따내던 브로커와 컨설팅 업체들까지 보육공간만 마련해 액셀러레이터로 등록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등록을 남발한 탓에 제대로 보육·투자 업무를 수행하는 업체에까지 피해가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액셀러레이터 등록을 위해서는 1억원 이상의 자본금과 임원진의 3년 이상 창업 분야 근무 경력, 2명 이상의 상근 인력, 보육공간 확보 등 조건만 갖추면 된다. 등록 과정에서 필요한 사업계획서 제출도 사실상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법에서는 보육과 투자를 위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계획서에 대한 명확한 규정 사항은 없다.
사후관리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공시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 등록 이후 3년 동안은 투자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이렇다 할 제재가 없다.
창투사와 액셀러레이터를 겸영하는 경우 구분은 더욱 모호해진다. 어떤 업무가 창업 투자에 해당하는지, 창업 기획을 위한 초기투자에 해당하는지 구분이 없다.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가 난립하면서 창업 시장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학교에 사무실을 얻어 요건을 갖춘 이후 정부 보조금 컨설팅만 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작은 사무실만 얻어서 액셀러레이터 이름만 내건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 다수는 정부 보조금 수령에 따른 성과금을 요구하는 문제를 야기하곤 한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정작 유망 기업을 선발해 사업화 모델을 만들고, 투자까지 이어 가는 액셀러레이터까지도 갑작스레 증가한 가짜 액셀러레이터로 인해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중기부 관계자는 “법에서 정한 기간 내 보육과 투자 의무 등이 정해져 있는 만큼 앞으로 더욱 창업기획자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