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에서 온 편지가 겨우 담 때문이라니(千里修書只爲墻)/그에게 세 척 양보한들 무슨 상관 있는가(讓他三尺又何妨)/만리장성은 지금도 여전하지만(長城萬里今猶在)/ 지난날의 진시황은 보이지 않네(不見當年秦始皇).”
청나라 강희제 때 예부상서 장영이 고향 집에 회신할 편지 대신으로 보낸 시다. 즉 고향에서 좁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이웃집끼리 경쟁하듯 담을 쌓으면서 각자 몇 척씩 더 나오게 되자 다툼이 생겼는데 모두 명문 귀족이라 관청 중재도 소용없다며 해결을 요청하는 편지에 대한 답시였다.
이를 받고 고향 가족은 담을 세 척 양보했고, 다투던 이웃도 담을 세 척 물려 화답했다. 그 결과 모두 여섯 척이나 되는 길이 100m 담장 사이로 나서 고향 사람 모두 통행이 편하게 됐다고 한다. '여섯 척 골목'에서 연유한 명칭인 육척항(六尺巷)은 훈훈한 공동체 발전을 이끈 '양보'의 상징으로 중국 안후이성 관광 명소가 됐다.
거창한 양보 말고 '소박한' 양보로 우리 대한민국을 훈훈한 공동체로 이끌 수는 없을까. 지레 불가능하다는 착각으로 노력조차 하지 않기 십상이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연이은 세 자리가 비었는데 먼저 탄 사람이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탄 젊은 연인은 자리는 두 개 비었지만 떨어져 앉아야 할 판이었는데 그때 가운데 앉은 사람이 재빨리 한 자리 옆으로 이동하면서 둘에게 붙어 앉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둘은 앉아서부터 도착역에서 내릴 때까지 연거푸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복하더라는 것이다. 한 좌석 이동이라는 매우 소박한 양보가 떨어져 앉길 싫어한 연인에게는 그렇게 큰 선물일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말미암은 갑작스러운 5인 이상 집합금지로 보통 팀당 4명과 캐디 1명인 골프장을 예약했다면 당혹스럽게 됐다. 골프 애호가인 지인은 한겨울인데도 예약한 그날이 하필이면 일기예보까지 포근해서 아무도 빠지고 싶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는 골프 동반자들을 위해 아름답게 먼저 양보하기로 했고, 나아가 동반자가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독감 증상이 있다고 선의의 거짓말까지 했단다. 나중에야 진실(?)을 알아챈 동반자가 크게 감동하자 그는 이렇게 소박한 양보 하나가 주위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큰 감동을 줬는지 몰랐다며 되레 행복해 했다.
신축년 새해에는 소박한 양보로 우리 대한민국을 훈훈한 공동체로 만들어 보자. 더욱이 올해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순서, 중소기업까지 주52시간 근무 확대, 재보궐 선거, 미국 신정부 출범 등으로 말미암아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갈등이 우려된다. 첨예한 이슈일수록 이해관계자 상호 간에 대한민국 공동체라는 목표 의식을 명확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럴수록 양보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다소 우월한 위치에 있는 집단이나 개인의 양보가 절실히 필요하고, 또 선행돼야 할 것이다.
나아가 팬데믹으로 인한 코로나블루(우울증), 코로나레드(화병)로 절대다수가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자. 가까운 우리 주위부터 배려해서 살펴보면 어떨까. 우리 모두 지하철에서, 골프장에서 거창하지도 않은 매우 소박한 양보로 대한민국 공동체라는 초석을 다지는 희망찬 신축년을 열어 보자.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jioh@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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