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사피엔스 시대]기고-AI 원천기술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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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 설명가능인공지능 연구센터장(KAIST 교수)

일론 머스크가 불러온 신기술 기반 사업이 세계적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비영리 기업 오픈AI는 GPT-3라는 새로운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공개했다. 기존 신경망 기반 언어처리 모델에 비해 10배나 많은 1750억개 파라미터를 담고 있는 GPT-3는 특정 주제로 글을 생성했을 때 그 내용의 질이 좋고 자연스러워서 사람이 작성한 글과 구별하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딥러닝을 앞세운 AI 기술 발전은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이제 학습 데이터만 충분히 많으면 사람이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인지 작업을 AI 시스템이 대체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세상을 바꿀 AI 기술이 더 많이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떻게 AI 기술 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와 기업의 예를 살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구글(웨이모), 테슬라 등 성공적인 자율주행 기업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에 대한 규제도 가장 먼저 없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 방위 고등 연구계획국(DARPA)의 장기적 안목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속적 투자다. DARPA는 2004년 사막에서 240㎞를 자율주행으로 건너는 경진대회를 개최해 우승자에게 약 10억원의 상금을 걸었다. 첫해에는 모든 팀이 실패했으나 다음 해 스탠퍼드대에서 개발한 스탠리(Stanley)라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가장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후 스탠리를 개발한 주역은 구글 및 테슬라 등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이동해 지금의 상용화를 이뤘다. 잊기 쉬운 사실은 DARPA는 1980년대에 이미 카네기멜론대를 지원해 인공 신경망 기반 자율주행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픈AI에서 개발한 언어 모델 GPT-3와 구글에서 개발한 BERT를 탄생시킨 배경에는 스탠퍼드대에서 개발한 질의응답 평가 데이터셋(SQuAD)이 있었다. 사람 수준의 질의응답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은 구글이나 스탠퍼드대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오랜 의지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국방부는 1992년부터 사람처럼 글을 읽는 AI를 연구하는 TREC 학술대회와 경진대회를 개최했고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는 2001년부터 문서를 이해하는 학회 및 경진대회로 현재에 이르렀다. SQuAD와 BERT의 개발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오랜 기간 TREC와 TAC의 참여자였다.

2016년 서울에서 구글이 인수한 작은 스타트업 딥마인드가 어떻게 바둑에서 사람을 이기는지 모두가 지켜봤다. 딥마인드 인수를 위해서 6000억원을 투자한 구글은 그 이후에도 1조2000억원을 투자하며 최고 수준의 AI 연구자 700명을 모아 강화학습 연구를 집중 지원했다. 현재 강화학습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는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딥러닝 기반 강화학습인 Q-러닝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런 알고리즘을 손쉽게 구해서 학습할 수 있지만 구글은 '신경망을 통한 강화학습 기술' '신경망을 통한 음성생성 기술' 등을 특허로 출원했고 이미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등록됐다.

일반적으로 AI가 공유와 공개 소프트웨어의 생태계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상용화된 기술이나 상용화 수준에 가까운 기술은 당연히 공개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인 중국의 얼굴인식 기술은 공개되지 않아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어렵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이 보유한 사람 수준의 인식 성능을 내는 대형 AI의 학습을 재현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클라우드 AI를 만드는 데 핵심기술인 대규모 학습 환경을 공개비영리기업인 오픈AI가 GPT-3를 통해 영리화를 진행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GPT-3를 학습하는데 약 40억원의 전기요금이 들었다고 한다. AI 기술을 진흥하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기업에도 전기요금 40억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다. 미래의 변화를 선도할 신기술의 결과물을 함께 얻고 싶은 투자자들의 진지함과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미 구글과 오픈AI가 개발한 AI 기술을 한국형 환경에 적용하고 한국어 모델을 학습하는 것으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 AI 선진 기업이 해결한 문제를 한국에 도입하는 추격 연구로는 세계시장을 열어갈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없다. 학교는 새로운 문제에 당당히 도전하고, 연구소와 창업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도록 국가가 나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최재식 KAIST AI대학원 교수 jaesik.choi@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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