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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는 기원전 5000년쯤부터 인류가 재배한 가장 오래된 식물자원으로, 19세기 초 목화가 의류 소재로 보편화하기 전까지 대부분 섬유용 원재료로 사용됐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대마의 다양한 부위별 치료 효과가 기록돼 있는 등 한방 약재로도 사용됐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섬유용 줄기를 제외한 대마 잎과 미수정 암꽃의 사용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마에 함유된 성분 '델타-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Δ9-THC)의 환각작용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946년 군정법령 제119호를 통해 최초로 대마의 성분 또는 조제품을 마약으로 규정했고, 현재까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마를 포함시켜 법으로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대마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뇌전증 치료제로 대마의 또 다른 성분 '칸나비디올'(CBD)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뇌전증은 인구 1000명당 4~10명이 발병하는 만성 신경계 질환으로, 우리나라에도 약 4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18년 뇌전증 치료제로 대마의 CBD를 주성분으로 하는 '에피디올렉스'라는 의약품을 허가했고, 국내에서도 뇌전증 환자와 시민단체 요청에 따라 지난해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 조항이 개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 대마를 활용한 산업화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전 세계에서는 대마 자원을 고부가가치 식품·화장품·의약품 소재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개발(R&D)과 산업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캐나다는 2001년부터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했고, 미국도 2018년 농업법 개정 후 대마 재배 면적이 증가했다. 중국도 지방정부에서 의료용 대마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용 대마가 합법화한 나라의 공통점은 대마의 일종인 헴프를 사용하고 있다. 헴프란 환각작용 성분(Δ9-THC) 함량이 0.3% 이하의 저마약성 대마를 통칭하는 것으로, 의약 성분인 CBD의 함량이 다소 많다.

헴프를 의약용 CBD 제조에 사용하는 이유는 원료부터 마약 성분이 낮은 차별화한 대마 소재를 택함으로써 완제품의 부정 이미지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마는 품종 개량이 많이 된 작물의 하나로, 기호용과 의약용에 따라 80여개 품종이 개발·재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농촌진흥청에서 섬유용 대마 청삼을 국내 재래종과 네덜란드 종(IH3)을 교잡해 개발 후 보급했으며, 저마약성 종이로 의약용 원료로의 활용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CBD 제조를 위해 재배되는 외국 품종은 성장 높이가 시설 재배에 적합한 1m 이내이고, 추출물 수율도 청삼보다 높아서 산업용 헴프를 이용한 의약용 CBD 산업을 위해서는 새로운 대마종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지난 7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제3차 규제자유특구사업으로 경북 안동시의 '산업용 헴프 사업'이 지정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가 참여하는 안동의 헴프 특구 사업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사업이긴 하지만 국내 최초로 대마로부터 99% 이상의 고순도 CBD 생산 플랫폼의 구축과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엄격한 품질검증 시스템 구현에 목표를 두고 추진될 예정이다. 특히 최근 정부의 한국형 그린뉴딜 정책에 넓은 틀에 포함되는 스마트팜 기술은 의약용 대마 재배에 중요한 설비이고, 대마 특성상 철저한 관리를 위해 필요한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의 보안 기술이 융합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형 그린 산업의 모델이 될 수 있어 사회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축적해 온 세계 수준의 제조 기술력과 바이오 산업 성장을 통해 확보한 풍부한 경험이 의약용 대마 사업에 집중되게 되면 관련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는 물론 천연물로부터 신약을 개발하는 성과도 가능할 수 있다.

'독약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 마약으로 취급돼 지난 70여년 동안 냉대와 불신을 받아 온 대마도 앞으로 정부의 적극 지원과 R&D 성과에 근거한 안전한 상용화를 통해 천연물 산업의 중요한 고부가가치 소재로 '대마불패(大麻不敗)'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함정협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천연물소재연구센터 책임연구원 ham0606@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