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뚫고 특정계좌 개설하라니...'비대면 바우처'의 모순

중기부, 신청·정산 온라인 처리
입금계좌는 특정 은행 지정
장시간 대기·줄세우기 재현 우려
업계 "타은행·가상계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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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중소벤처기업부가 한국판 뉴딜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내놓은 비대면 서비스 바우처 사업이 특정 은행 계좌만 허용하면서 사업 초기부터 논란을 낳고 있다.

이 사업은 중기부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하는 방식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자 영상회의, 재택근무 등 비대면 서비스를 중소기업이 받을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다.

올해 8만개, 내년 8만개 등 총 16만개 중소·벤처기업이 바우처를 지원받는 등 총 6400억원의 재원이 투입되는 정부 대형 사업이다.

이 사업이 시행 초기부터 수요기업 입금 계좌를 신한은행 대면 계좌만 허용, 기업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업 자체가 비대면 서비스 지원 사업인데 자금지원 방식은 대면 창구를 방문해서 신한은행 계좌만 만들어야 하는 등 '재래식 한국판 뉴딜'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 같은 불편함 때문에 시행 초기부터 신청을 포기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경영지원팀이 없어 직접 은행을 방문해 40분을 기다려서 신한은행 계좌 개설을 신청했는데 계좌 개설을 위한 서류 하나가 누락됐다고 다시 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수십만원을 지원 받으려고 거의 한나절을 날렸다”고 전했다.

지방 소재의 또 다른 중소기업 대표는 “우리 공단에는 신한은행 지점이 없어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한 시간 넘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면서 “모든 카드사나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특정 은행만 지정해 체크카드를 만들라고 하니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중기부는 바우처 사업 운용에서 신청부터 정산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비대면 방식으로 대상 여부를 확인하는 현대식 인프라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정부 자금을 받기 위해서는 신한은행 창구를 직접 방문해서 신한은행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상당수 중소기업은 16만 기업이 대상인 정부 사업인데 특정 1개 은행의 계좌 개설만 허용하는 것은 명확한 행정편의 처사로, 코로나 시대에 역행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특히 신한은행 지점이 없는 지방 소도시 소재 기업은 불편이 불가피하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과거 코로나 소상공인 정책자금 지원 때도 수혜 소상공인이 은행 창구에서 장시간 대기하는 등 동일한 불편과 민원을 제기했는데 유사한 일이 재발한 것”이라면서 “정부가 지금이라도 타은행 계좌를 허용하거나 가상계좌 발급 방식을 채택하게 하는 등 기업 불편을 해소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업계는 비대면 바우처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비대면, 타은행 계좌로도 처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면 바로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비대면 플랫폼에서 결제금액 안내 시 수요 기업의 입금을 위한 가상계좌 통보 기능만 추가하면 된다”면서 “비대면으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음에도 대면하게 하는 신규 계좌 개설을 고집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중기부는 비대면 서비스 바우처 사업이 3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신설된 사업인 만큼 시급한 집행 필요에 따라 신한은행을 바우처 전용 통장 개설 은행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이보다 앞서 입찰을 거쳐 창업진흥원 수탁 은행으로 선정된 바 있다. 다음 달부터 즉각 비대면 바우처 플랫폼을 구축해 올해 안에 수요·공급 기업을 선정하고 사업이 시행돼야 하는 만큼 수탁은행인 신한은행이 플랫폼을 구축하고 해당 계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수요 기업이 올해만 8만여개에 이르고 공급 기업도 300여개인 만큼 빠른 시행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수탁 은행을 통해 사업을 실시, 빠른 집행이 이뤄지도록 했다”면서 “비가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 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은행에 보완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업계는 신한은행이 가상계좌를 발급하거나 해당 기업이 보유한 기존 법인 계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시스템에 타은행 정보 추가 입력과 자금관리서비스(CMS) 출금이체 동의 기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시스템 변경도 2~3일이면 완료할 수 있다는 게 정보기술(IT) 개발자들 견해다.


[표]바우처 지원 서비스 분야(자료-중소벤처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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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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