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사 1대 주주인 기획재정부가 정부 소유 지분 매각을 결정하고 2대 주주인 서울신문사 우리사주조합에 통보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전KDN 등 공기업이 소유한 보도채널 YTN의 지분 매각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동안 물밑에서 설왕설래하던 공영미디어의 '민영화' 문제가 공론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공영미디어의 민영화는 하루 이틀 얘기된 건 아니다. 참여정부 당시 '발전된 민주 국가에서 보도하는 미디어를 정부가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공영미디어를 많이 소유한 나라에 속한다. 서울신문사를 비롯해 KBS, MBC, EBS, YTN, 연합뉴스 등. 미디어가 성장하지 못한 저발전 국가에서 민주 공론장 기능 또는 문화의 계승·발전과 같은 공공 역할을 위해 공영미디어 운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제 사회가 일정 수준 발전했다면 미디어 또한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 성장 및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특히 '제4부'로서 언론 독립성 확보와 권력에 대한 감시 및 비판 역할이란 측면에서 보도 기능이 있는 미디어를 정부가 소유·관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 확인된 만큼 관심은 어떤 방식과 절차를 거쳐 공영미디어를 민영화할 것인가에 모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있다. '국내 미디어 정책과 산업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 공감대 형성이다. 공익성과 산업성 어디에도 힘이 실리지 않고 있는 무원칙한 미디어 정책 기조를 재정립하고, 난마처럼 얽혀 있는 미디어 시장을 정비·재편할 절호의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국내 미디어 산업은 '정치 과잉, 정책 결핍' 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보도 공정성 논란이 발생하면 어떠한 정책 논의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대선과 총선 때마다 정치 공정성 논란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정상의 미디어 정책 추진을 어렵게 한다. 정책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 당시 미디어 정책 및 산업의 혁신 논의를 위해 '미디어혁신위원회 구성 및 운영'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정부 출범 4년 차가 다 되도록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자칫 정치·이념 공방으로 일관, 성과는커녕 국론이 분열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필요한 논의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미디어를 둘러싸고 벌이는 사회정치 논쟁을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윈윈하는 게임으로 바꿔야 한다.
둘째 공영미디어와 민영미디어의 '공공 책무'와 이에 따르는 '규제의 적정성'을 재검토해 보자. 현행 방송법은 산업화 시대의 정책 기조와 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 위상에 따라 세분화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이라는 큰 틀 안에서 대동소이한 규제를 하고 있다. 행정편의주의 전형이다. 대표 사례로 국가 기간방송인 KBS나 민간기업이 대주주인 SBS의 공공 책무 및 규제에서 큰 차별성이 없다. 사회정치적으로 민영 같은 공영방송, 공영 같은 민영방송을 요구받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정부나 민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공공성 확보도, 산업 경쟁력 강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낡은 정책 패러다임'을 확 바꿀 때가 됐다.
셋째 미디어 정책의 눈은 글로벌로 향하되 국내 콘텐츠 산업의 뿌리를 더욱 튼실하게 만들자. 지금 국내 미디어 산업은 '글로벌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인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한류가 급성장한 것에 비해 그것의 기반은 탄탄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실해지고 있다. 현재 한류의 주력인 지상파방송사와 외주제작업체는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틈을 노리고 중국 콘텐츠 기업과 글로벌 OTT 기업이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해서 국내 및 한류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지금은 국내 콘텐츠 기업과 글로벌 플랫폼 기업 간 '전략적 제휴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에 '종속'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국내 미디어 기업 종사자와 정책 당국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응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고삼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koss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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