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블록체인으로 전자정부 2.0 혁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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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 도입에 대해 “뭐가 좋은데?”라고 물어본다. 가끔은 한걸음 더 나아가 “더 빠른가?”라고 채근한다. 물론 현재의 잘 정비된 우리나라의 전산처리 시스템보다 더 빠르지 않다. 그러나 이미 블록체인에 의한 업무처리·행정처리 시스템은 더욱 빠르고 믿을 만한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세상'에 필요한 기술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문제, 즉 손쉬운 '복사'와 '위조'에 의한 디지털 화폐의 2중 사용(double spending)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에서는 동시에 많은 참가자가 개인키로 서명하도록 하고 시간 꼬리표(time stamp)를 달아 이중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블록체인의 신뢰는 '동시에 많은 사람이 내용을 검토해 확인하고 개인키로 서명'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고, 이미 서명을 마친 거래를 변조하기 위해서는 모든 참가자의 합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변조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많은 참가자가 '내가 보고 확인했다'라고 서명한 거래라면 디지털 공간에서도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세상의 많은 이해 당사자들이 모이고 연결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다수의 참여자가 거래를 확인하는 '신뢰 생성 과정'이 디지털 거래를 빠르게 하는 '디지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다수의 참여자가 확인하고 서명하는 블록체인의 '동시 서명' 과정이 블록체인 세상에서 이뤄지는 거래를 '병렬 처리'함으로써 기존의 순차적으로 이뤄지던 업무 프로세스를 더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이기 때문에 24시간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관세청에서 지난해 구축한 직수출 전자상거래 시스템의 경우 해외에서 한국산 A 화장품 구매 요청을 하고 결제하는 경우 한국의 직접구매 상품 포털 사이트, 신용카드 결제 기업, 화장품 A기업이 구매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연결돼 구매요청-구매승인-지불 과정이 포털 노드, 신용카드 노드, 화장품 기업 A노드가 동시에 참여하는 네트워크에서 돌아간다. 결제가 끝난 주문은 화장품 기업 A와 물류창고 B, 택배회사 C, 통관기업 D, 관세청, 선박회사 E까지 디지털 네트워크로 동시에 처리된다. 이전과 같이 결제가 끝나면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화장품 업체 A기업이 사무실을 열고 담당자가 주문 내역과 재고 여부를 체크하고 물류창고 B, 택배회사 C, 통관기업 D에 물품 택배 배송 주문을 순차적으로 내던 것들이 블록체인 상에서는 한꺼번에 이뤄진다. 관세청 수출 통관 보고와 선박회사 E에 보내는 주문 역시 동시에 병렬로 처리된다. 이전에 7단계의 순차적인 확인과 검토를 거치던 과정이 단 몇 개 과정으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국내 전자제품의 베트남 수출의 경우 원산지 증명서는 반드시 한국 관세청에서 발급 받아야 하고, 베트남 수입업자는 이 원산지 증명서를 첨부한 수입신고서를 베트남 관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원산지 증명서를 상공회의소를 통해 관세청에 신청하고 승인이 떨어지면 상공회의소를 통해 수출업자에게 전달되고, 이는 팩스를 통해서든 종이 문서로 출력 배달된 원산지 증명서가 베트남 수출업자에게 전달돼 베트남 관세청에 수입신고서와 함께 제출되는 순차적인 과정으로 처리돼 왔다. 담당자의 휴가·병가·부재 상황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통상 사흘 이상 걸린 과정이었다.

그러나 블록체인 시스템이 도입되면 한국 관세청에서 승인되자마자 이 승인 사실이 한국 수출업자, 베트남 수입업자, 베트남 관세청까지 동시에 전달되기 때문에 베트남 수입업자가 별도로 한국 원산지 증명서를 출력해서 관세청에 들고 갈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베트남 관세청에 이미 '신뢰성'이 확보된 한국의 원산지 증명서가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수입업자는 수입신고서만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상황 끝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그동안 비대면 디지털 처리 과정을 신뢰하지 않던 모든 이해 당사자에게 이제 사이버 공간에서 신뢰성 있는 처리를 보증해 주는 파격적인 혁신 기술이다. 제출된 서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인력을 투입해 위조, 변조, 법령과 규정의 적정성을 체크하던 중간 과정이 블록체인의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이라는 과정에 의해 자동으로 진행되고 동시에 병렬로 처리됨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생산성 향상의 강력한 도구로 민간 업무와 공공서비스에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에 많이 도입된 로봇처리자동화(RPA) 기술이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과 결합되면 사람의 검토와 체크가 필요 없는 비대면 고속 처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미뤄 온 전자정부의 대규모 혁신을 시작했으면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자랑해 온, 전 세계 정부들이 부러워하는 전자정부 1.0은 사실상 100년 전 일제시대 행정 시스템을 종이에서 컴퓨터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에서 위임받아 처리하던 주민신고와 가족등록제도, 병역신고와 처리제도, 세금 신고와 부과, 의무교육 신고와 처리 등 대부분이 오랜 관행과 절차는 전자화되고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공무원들은 제출된 서류와 데이터의 위·변조 여부 및 법령 준수를 체크해야 하는 순차적인 처리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이제 이 오래된 절차와 처리 과정을 블록체인 도입으로 병렬 처리가 가능한 부분을 가려내 더 효율화하고 빠르면서도 편리한 전자정부 시스템으로 정부를 혁신할 수 있다. 그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규정된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에 맞춰 진행되던 사무 처리를 24시간 돌아가는 해외 직구 시스템처럼 언제든지 신청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개편할 수 있다.

이미 2년 전부터 조달청에서는 의미 있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공공사업 발주를 위해서는 입찰에 참여하는 모든 업체가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엄청 많았다.

예를 들어 강원도 강릉에 있는 남대천에 최신형의 멋진 다리를 새로 놓아야 하는 경우 건설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런 다리를 놓은 경험을 증명하기 위해 전국에 산재한 지자체로부터 유사한 공사를 해 본 '실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공사에 참여하는 기술자들의 이력과 자격 증명서를 여러 협회에서 발부받아 제출해야 한다. 입찰 참여제안서가 웬만하면 300쪽에서 1000쪽까지 넘어가는 이유다.

그런데 조달청 계획은 반복해서 제출하는 실적증명서와 기술자 자격증명서를 이미 제출한 증명서류로 대체하거나 필요한 경우 원본을 갖고 있는 기관의 확인을 거치겠다는 것이다. 원본을 갖고 있는 기관의 해시값만 갖고 증명서의 진위 여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굳이 블록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시값만으로 가능하지만 블록체인 위에 구축하는 경우 모든 서류 제출과 입찰 과정이 빠르고 믿을 수 있게 처리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분야의 엄청난 혁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제출한 자료를 밤새워 가면서 일일이 확인하던 작업이 순식간에 블록체인 또는 해시값 대조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공공서비스 개선이자 혁신이다.

블록체인 도입으로 사실상 사이버 공간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고, 더욱이 24시간 병렬 처리됨으로써 그 거래가 더욱 빨라진다면 그동안 순차적인 처리 과정 곳곳에서 사람에 의한 검토와 검사가 줄어들 염려는 있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 4.0에 의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걱정해서 새로운 공공서비스로 옮겨 가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지난 2000년 인터넷에 의한 증명서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정부기관의 인력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 증명서 도입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휠씬 편리하고 더욱 풍성해진 공공 서비스를 즐기고 있다. 그동안 신고를 받고 증명서를 떼어 주는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주민의 복지를 돌보고 살피는 복지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전 세계 40여개국에 한국의 전자정부 기술, 보안 기술을 수출하기 위해 돌아다닌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이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중앙정부기관의 서비스를 대폭 혁신할 때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기존의 행정 서비스를 다시 설계하고 제출된 서류의 진위와 법령과 규정의 준수를 체크하기 위해, 공무원의 업무 시간을 맞추기 위해 민원 처리에 발을 구르던 과정을 블록체인으로 더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자. 이것이 새로운 시대 국민들의 바람이자 명령인 것이다.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이사 juchoi@marka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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