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노조 문제 '대국민 사과'
"자녀에게 경영권 대물림 안해"
'무노조 경영 폐지' 방침 재확인
시민사회 소통·준법감시 강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무노조 경영 등 과거의 잘못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했다. 또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뜻도 처음으로 밝혔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삼성에 준법을 뿌리내리고,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 부회장은 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오히려 실망 안기고 심려를 끼쳐 드렸다”면서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있었다”고 반성했다. 이 부회장은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면서 “이 모든 것은 저희의 부족함 때문이고, 저의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경영권 승계 문제 △노사문제 △시민사회 소통과 준법감시에 대해 사과와 함께 입장을 내놨다.
먼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승계 문제로 논란이 생기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회장은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고,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오로지 회사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면서 “제 아이들에게는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노사문제에 대해서도 과거 잘못을 사과하고 무노조 경영 폐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문화는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고, 삼성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직원이 재판 받고 있는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 받은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은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사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고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시민사회 소통과 준법감시에 대해서도 적극 임하는 자세를 약속했다.
이 부회장은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낮은 자세로 먼저 한 걸음 다가서겠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에 귀를 기울이겠다”면서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이고, 저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겠다.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자신과 관련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독립적 위치에서 계속 활동하도록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오늘은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인 미래'였다. 임직원 모두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고, 많은 국민의 성원도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최근 2~3개월 동안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 목숨 걸고 생명을 지키는 일에 나선 의료진, 공동체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자원봉사자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많은 시민을 보면서 무한한 자긍심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됐고,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면서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사과는 삼성 준법감시위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삼성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의혹, 노동조합 문제 등에 대해 반성을 담은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다. 애당초 지난달 10일까지 사과 기한을 정했지만 삼성 측이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해 권고안 논의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기한 연장을 요청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