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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오수처리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 A는 수년동안 대기업 B에 납품했다. B는 지속적인 거래를 빌미로 A의 특허에 공동특허권자로 넣어줄 것을 요구했고 A는 울며겨자먹기로 응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B는 유사 기술로 특허를 출원·등록했다. 이후 문제를 제기하자 B는 A와의 거래를 일방적으로 계약해지했다.

#대기업 C는 D사 인수 협상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D사의 핵심 기술자료를 넘겨 받았다. 하지만 인수가액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최종적으로 협상은 결렬됐다. 하지만 1년 뒤 C 대기업의 다른 계열사가 D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으로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기술창업이 3년 연속 최고치를 갱신하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소·스타트업의 기술 탈취 사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기술 탈취는 수십년간 이어져온 대·중소기업간 고질적인 병폐지만 정부의 실효적인 처벌 및 구제는 미흡한 실정이다.

중기중앙회의 중소기업 기술보호수준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간 기술 유출 피해를 당한 국내 중소기업은 246개사다. 피해 금액 규모는 5400억원에 이른다. 전수조사가 아닌 만큼 확인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한다면 중소기업의 피해는 더 막대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소기업 기술분쟁관련 상담 및 접구 건수도 매년 증가세다. 2017년 70건, 2018년 89건에서 지난해 111건으로 늘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있어 핵심기술은 사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본질적 구성요소다”며 “올해에도 지난해 대비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기술분쟁 관련 상담과 조정 접수 건은 증가 추세고, 해를 거듭할수록 기술 탈취 수법도 다양화·고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탈취는 통상적으로 협력사의 기술자료를 요구한 뒤 단가 후려치기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 나아가 중소기업에 품질개선 요청을 하면서 기술 자료를 건네받아 직접 제품을 생산하거나 다른 협력사에 자료를 제공해 더 저렴하게 제품 생산을 하는 일도 있다.

한 중소기업 인원은 “대기업에서 샘플을 요구해 전달했더니 얼마 후 대기업 계열사에서 그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봤다”며 “소송을 감당해낼 수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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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탈취 사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기술 침해사실을 자체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다. 막대한 소송 비용과 시간 손실도 부담스럽다. 오랜 공방끝에 승소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이러한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권칠승·어기구 의원은 각각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상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상생법 개정안은 병합된 상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황이다. 개정안에는 대기업이 기존에 거래하던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물품과 유사한 물품을 자체 제조하거나 제3자에게 제조를 위탁한 경우 대기업의 기술유용행위가 있었다고 본다. 입증책임을 중소기업에 두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상호 균등하게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기업간 비밀유지협약 체결을 의무화하고, 위탁기업의 기술유용 행위로 인한 중소기업 손해의 3배 범위에서 배상책임이 주어지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유용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중소기업계는 기술 유출 우려없이 혁신 기술개발과 기업활동에 보다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접근이다. 반면 대기업측은 기술자료 개념이 모호한데다 타법에도 기술유용 규제가 있어 규제가 중복된다는 점에서 개정안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기업간 자율적인 협력관계 형성에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술유용분쟁 등의 우려로 협력사를 오히려 해외업체로 변경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했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오랜기간 개선되지 않고 있는 기술 탈취·침해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희경 경청 변호사는 “상생법 개정안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기술분쟁에서 겪는 입증과 증거자료 수집의 어려움 등 증거의 구조적 편재에서 오는 당사자 간의 실질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함”이라며 “이는 실체적 진실과 공정한 재판을 구현하는 영미법상의 '사실추정의 원칙', 독일 대륙법계의 '일응의 추정 원칙', 선진국의 '디스커버리 제도 등을 도입한 진일보한 안으로서, 중소기업에 대한 실효적 기술보호 및 피해구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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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