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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팬데믹 위험을 널리 알리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1918년 스페인독감과 같은 팬데믹이 지금 발생한다면 약 3300만명이 6개월 이내에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치명적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야기된 스페인독감은 5억명을 감염시키면서 약 5000만에서 1억 정도의 인구가 죽은 역사적 재앙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이 1500만명 정도였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빌 게이츠는 큰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는 팬데믹에 대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The Next Pandemic'에서는 중국 재래시장에서 야생동물을 그 자리에서 잡아주는 장면을 보여준다. 동물들을 겹쳐 놓아 고기와 피가 서로 뒤엉키는 비위생적인 환경이다. 그런 곳에서 바이러스 변이가 발생하면, 인체에 감염되었을 때 면역시스템이 동작하지 않아 치명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진원지로 추정되는 우한 재래시장도 유사하다.
13세기에 창궐한 흑사병이나 천연두로 멸망한 아즈텍 경우처럼 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예기치 못한 전염병으로 재앙이 벌어지곤 했다.
19세기 이후 과학기술 발전으로 방역체계, 위생관리, 진단과 치료, 백신 예방은 괄목할 만큼 발전했지만, 인간의 탐욕스런 자연 파괴는 동물 생태계를 무너뜨렸다. 그로 인해 돌연변이에 의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 야생동물에 존재하는 약 160만개 바이러스 중에 3000개 정도만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여가면서 전염확률은 한층 높아졌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되는 것이라면, 컴퓨터 바이러스는 기계 약점을 파고 든다. 행위를 나타내는 숙주, 감염, 변종, 잠복, 그리고 방어수단 일환인 격리(quarantine), 봉쇄, 차단 등 동일한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 컴퓨터바이러스는 PC에서 발생했지만, 그 후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악성코드(Malware)'라는 복합적 개념으로 발전했다.
악성코드는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파고든다. 마치 인간 면역체계 허점을 파고드는 바이러스와 유사하다. 사이버위생(cyber hygiene) 개념이 도입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손을 자주 씻는 위생생활은 바이러스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컴퓨터에서도 백신을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최신 소프트웨어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사이버위생의 기본이다.
물론 팬데믹은 태생적으로 사이버 위협과 전혀 다르다. 팬데믹은 바이러스 감염과 침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고 사이버 위협은 기계를 이용한 인간의 고의적 악행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혼란이나 사고 발생 시 대응하는 전략이 비슷하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과 빠른 정보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를 무시한 정치적 행동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도 보안사고의 데자뷰다.
현재의 세계는 여행, 출장, 유학, 이민, 컨벤션 등 다양한 스펙트럼 만남이 국경을 뛰어넘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접촉은 잠재적 리스크이고,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리스크는 현실이 됐다.
마찬가지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 기기는 그 자체가 리스크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악성코드로 중요정보가 탈취당하고 랜섬웨어로 협박 받는다. 기계와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리스크다.
미래 전쟁은 총과 대포가 아니라 바이오 테러나 사이버 무기에 의해 이뤄질 것이다.
인간적으로나 기계적으로 글로벌하게 연결돼 살아가는 환경에서 다가오는 위험을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세계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본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