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에 개발된 초기 자동차의 속도는 4~14㎞ 정도였기 때문에 승객이나 운전자의 안전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자동차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철과 나무를 활용했고, 안장과 같은 일부 부품에만 가죽이나 패브릭 재료가 주로 사용됐다.
1800년대엔 자동차 속도가 70㎞로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안전에 대한 인식과 대량 생산, 경량화에 대한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이르러 헤드램프·범퍼와 같은 외장 부품에 플라스틱 소재가 사용됐다. 이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기술이 발전하면서 엔진 주변이나 조종석(칵핏) 등 고내열, 고내구성을 필요하는 부품으로 적용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의 배경이 된 '르망24' 대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동차 회사간 고성능 차량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높은 내구성에 경량화가 가능한 소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플라스틱 소재 사용 증가와 경량 알루미늄 차체 사용 등 신소재가 적극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성능 경쟁이 고유가 시대를 거치면서 연비경쟁으로 바뀌었고, 자동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부품과 바디 설계 일체화, 단순화를 추구하게 된 배경이다.
차량 무게를 10% 줄이면 7%의 연비향상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재의 경량화가 연비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탄소섬유나 유리섬유 등을 섞은 복합소재 플라스틱,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 합금, 고장력 강판 등 가벼우면서도 부품 강성을 유지하는 소재들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엔 금속 대체 플라스틱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히 진행 중이며 이렇게 개발된 소재 중에는 탄소섬유강화 플라스틱(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s)이 있다. 철보다 약 70% 가벼우면서도 강도, 탄성 등 물성이 약 10배 우수하다.
가장 유력한 대체 소재이지만 대형 부품을 제작하기 위한 성형의 어려움 때문에 철 대비 제조원가가 수십 배 상승하는 단점이 있다. 콘셉카나 슈퍼카에나 일부 적용되다가 최근 유럽 자동차 회사에서 볼륨 모델 최초로 차체에 탄소섬유강화 플라스틱을 적용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정부 주도로 탄소복합소재 클러스터를 구축, 자동차 부품 제조사와 학계, 부설 재료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현대·기아차를 중심으로 부품사인 현대모비스를 비롯해 소재업체들이 함께 연구를 진행해 탄소복합소재를 적용한 선루프 프레임, 차량 보닛을 상용화했다. FEM(프론트엔드모듈), CCB(카울크로스바)와 같은 전통적인 금속 부품을 탄소복합소재로 대체하는 기술도 선행연구를 마치고, 전동화 차량 플랫폼에 적용을 목표로 양산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에는 자동차가 단순 운송수단에서 엔터테인먼트, 업무공간 등으로 진화함에 따라 이에 맞는 내장재 옵션도 증가하고 있다. 전통적인 내외장 부품의 모습이 진화하며 소비자의 니즈를 맞추기 위한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변화할 전망이다. 기존에 금형을 만들어 플라스틱을 사출하는 방식으로는 수익성, 생산성이 저하되기 때문에 금형이 없어도 되는 3D 프린터의 수요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모비스는 연구개발본부 내 별도 재료연구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량화, 지속가능한 소재 개발은 물론 매년 국제 컨퍼런스, 학회 참석 등을 통해 신소재 트렌드를 반영한 재료 개발 로드맵을 구축했다. 기술전문가 제도를 통해 전세계 유수의 대학과 기관에 연구원을 파견하는 등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