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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전자신문DB>

기업은 보통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구분하며, 10인 미만의 소기업인 마이크로 기업을 추가해서 세분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을 '스몰 앤드 미디엄 엔터프라이즈'(SME)로 나타내고 있으며, '중기업(미디엄 엔터프라이즈)'을 따로 분리해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구분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견)기업을 떼어 내어 별도의 정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경계는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고용 인원 기준 250~500명 선으로 폭이 넓다. 이 경계 구간을 중견기업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중견기업은 고용 인원 외 매출이나 자산, 기업 구조 등 여러 요소를 반영해 정의한다.

우리나라는 2014년 1월 21일 중견기업의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각각 원활하게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일자리 창출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중견기업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가 중견기업법을 만든 이유는 숫자에서 나타난다. 전체 기업 수에서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0.2%이다. 독일과 미국은 0.5%를 넘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0.08%로 OECD 국가 가운데 끝에서 세 번째다. 상시 고용 인원에서도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이 31.3%이다. 이 가운데 독일이 37.5%, 미국이 56.4%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3.2%로 OECD 국가 가운데 끝에서 두 번째다. 우리나라는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마이크로 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을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마이크로 기업,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갈수록 기업 수가 주는 안정된 구조가 정상일 것이다.

기업군 분포가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의 절반이 되지 않으며, 선진국의 5분의 1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심각하게 짚어 봐야 할 문제다. 기업 생태계를 실핏줄에 해당하는 마이크로 기업으로부터 대동맥·대정맥에 해당하는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계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는 중견기업에 해당하는 관상동맥이나 뇌동맥 부분이 매우 좁아져서 피가 심장이나 뇌로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상황과 유사하다.

우리는 지난해 7월 이후 글로벌 가치사슬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체험하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여러 개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1차 또는 2차 벤더로 구성돼 있다. 이들 역시 독자 가치사슬을 보유하고 있다. 즉 중견기업은 대기업이 선도하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여러 갈래 가운데 전문 영역의 가치사슬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중견기업 층이 두텁고 글로벌 경쟁력이 강하면 가치사슬의 안정성과 경쟁력이 높아진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필요로 하는 생산 규모와 품질관리 수준을 충족시키고 새로운 가치사슬 형성에 필요한 신제품 개발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할 능력을 보유한 중견기업이 많아야 하는 이유다.

중견기업은 글로벌 가치사슬이 새로 형성되거나 재편될 때는 물론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변화 속도를 충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군이다. 이런 업의 수를 늘리고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선순환이 가능한 안정된 가치사슬을 구축해야 한다. 역량 있는 중소기업이 주저하지 않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도해야 한다.

다음 주에는 글로벌 가치사슬을 선도하는 대기업의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jkpark@nanotech2020.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