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서도 벤처투자시장과 전통 자본시장 경계가 허물어지는 분위기다. 금융지주회사 차원에서 벤처캐피털(VC)을 신규 자회사로 편입하는가 하면 증권사는 기업공개 이전 단계 기업에까지 점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증권사에게 액셀러레이터 겸영을 허용한 것 역시 자본시장의 기업 발굴 기능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앞서 증권사에게도 신기술사업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한 바 있다. 2016년 중소기업특화증권사인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이 신기술금융 라이센스를 처음 취득한 이후 각 증권사들이 일제히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기술금융 투자 실적은 2016년 1조2660억원에서 2018년 2조4932억원으로 투자 규모가 갑절로 늘었다. 증권사가 시장에 뛰어든 이후 본격적인 투자 규모 증가가 나타난 셈이다.
증권사의 기업 발굴 기능도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난 9일 위탁운용사 신청 접수를 마감한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의 출자 사업에는 증권사로만 이뤄진 펀드 제안이 등장하기도 했다. 신영증권과 하나금융투자가 공동 업무집행조합원(GP)을 맡아 펀드를 운용한다. 그간 기업 발굴과 비상장 기업에 대한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 VC와 증권사가 협업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증권사 간 협업은 흔치 않은 경우다.
이달부터 금융위가 증권사에 액셀러레이터 업무까지 겸영이 가능하도록 하면서 금융시장의 기업 발굴 기능도 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미 은행이나 지주회사 단위에서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지만, 은행 조직의 특성 상 긴밀한 투자가 이뤄지기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서 “직접 자금조달 기능이 은행보다 더욱 강한 증권사에서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면 성장 단계까지 보다 긴밀한 지원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업 신기술금융사도 증가 추세다. 펄어비스 등 상장기업이 자회사로 창업투자회사가 아닌 금융위 소관 신기술사업금융업을 등록하는 사례도 점차 증가하는 분위기다. 하나금융지주 역시도 지난해 벤처투자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신기술사업금융업자인 하나벤처스를 신설하기도 했다.
증권사 뿐만 아니라 자산운용사의 벤처투자 시장 진입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비상장 기업에 대한 주식과 채권의 중간 형태인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다양한 메자닌 기법을 활용하는 운용사가 급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인해 메자닌 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진 만큼 일부 전문운용사를 중심으로 스케일업 기업에 대한 회사채 시장 진출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벤처투자의 특성인 공·사모 구분도 점차 옅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올해 자본시장 정책 과제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소수의 전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 비상장 투자와는 달리 다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하고 거래소에 상장하는 방식이다.
BDC는 특히 증권사 계열 VC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산하 VC에서는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기존 일반투자자를 주 고객으로 상대하던 증권사는 리스크 관리와 유동성 공급 등에 강점이 있는 만큼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창구를 통해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는 기존 공모펀드에 전문성을 갖춘 자산운용사 뿐만 아니라 증권사와 벤처캐피털(VC)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가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스피나 코스닥 등 기존 전통 자산 수익률이 점차 감소하면서 다소 위험이 있더라도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분위기”라면서 “투자자들이 안전하게 상품을 매입할 수 있도록 안정성 있게 상품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