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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뛰어넘는 통치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 정부, 정당 등 어떤 정치조직도 국가가 가진 힘에 비길 게 못된다. 국가라는 최상위 권력을 만든 배경은 생존과 번영에 있다. 인류는 국민 생명과 안보를 위해 국가라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조직을 만들었다. 미국 시카고대학 존 미어셰이머 교수가 출간한 베스트셀러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래 전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국가를 그렇게 정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가'라는 다소 거창한 화두를 꺼낸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삼켜 버렸다. 대구를 기점으로 확진환자가 크게 늘면서 전국이 초비상이다. 전시라는 말까지 나온다. 학교는 문을 잠그고 건물은 폐쇄되고 기업 활동은 멈췄다. 시장은 숨죽이고 증시는 폭락했다. 확진 환자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며칠 사이에 매일 두 배씩 널뛰기했다. 모수격인 검진자에 비례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생명과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수라장이었던 중국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상황이 역전됐다. 사건이 불거지자 원색적인 논평이 줄을 잇고 있다. 정부를 비난하고 신천지를 욕하며 여당이나 야당을 헐뜯는 고성이 오간다. 미디어도 비난 대열에서 예외일 수 없다.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대부분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식이다. 행동심리학에서는 말하는 '사후확증편향' 이론 그대로다. 결과를 보고 난 후에 설명은 쉽다. 문제는 자칫 우리를 오만하게 만들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책임론도 편으로 갈렸다. 색깔과 이념을 앞세워 마녀사냥 식으로 상대방을 몰아붙인다. 지지하고 반대하는 진영으로 갈라서 낯 뜨거울 정도로 어퍼컷을 날린다. 여론에 편승한 날선 정치공방은 덤이다. 급기야 여론전은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청원과 응원하는 청원으로 갈려 무의미한 숫자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태 본질에서 한참 비껴났다는 느낌이다.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지금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할까. '코리아 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내수는 꽁꽁 얼어붙고, 수출마저 막힌다면 국가부도사태와 맞먹는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 당장 우리 집에 난 불이 옆집으로 번질 상황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본업에 집중해야 한다. 불부터 끄는 게 급선무다. 국가위기에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친문과 반문이 있을 수 없다. 화재 원인은 불길을 잡은 이 후에 따져도 늦지 않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본업은 전염 경로를 차단하고 감염자 확산을 막는 일이다. 나머지는 모두 불필요한 삭쟁이다. 굳이 일에 비유하면 부질없는 '허업(虛業)'이다. 쓸데없는 잔가지는 쳐낼수록 좋다. 백신이 나오면 금상첨화지만 바이러스 특성상 시간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확진 환자가 걱정이지만 오히려 초반에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진단 규모가 커지면 짧은 시간에 환자가 늘겠지만 감염 경로를 파악하고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선 불가피하다.

지금은 시비를 가릴 때가 아니다. 작더라도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게 중요하다.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 등 개개인이 위기 상황에서 본업과 허업이 무엇인지 구분해야 한다. 누구 탓인지는 상황이 끝나고 가려도 충분하다.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다. 그게 국가의 존재 이유다. 정치와 이념 모두 국가 앞에서는 곁가지일 뿐이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en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