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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개관일부터 지금까지 32년째 근속 중인 최진숙 과장 / 사진 : 본인제공>

◇ 88서울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서울의 문화공간

세계인이 함께하는 국제적 규모의 스포츠 대회인 올림픽이 1988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게다가 1986년의 아시안 게임을 유치한 직후 2년 만에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당시의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1천만 이상의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였으나 문화예술을 위한 공간은 ‘세종문화회관’ 정도가 있었을 뿐 이외에는 변변한 문화시설이 전무하다시피했다. 때문에 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된 이후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민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공공기관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지금은 사라진 ‘대한민국 문화공보부’에서 1982년 예술의전당의 건립을 최초로 건의하였고 1984년 지금의 위치에 착공을 시작했다. 재단법인 예술의전당이 설립된 것은 1986년 12월 24일이었다.

오늘날의 예술의전당은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만 넓은 면적의 공간 인터라 처음에는 모든 공간들이 한꺼번에 개관되지 못했다. 맨 처음 1988년에는 음악당과 서울 서예 박물관이 개관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90년에는 한가람미술관과 예술자료관이 개관되었으며 1993년에 오페라하우스를 개관하면서 현재의 모습과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의 2월 15일은 예술의전당이 개관된 날짜이고 오늘로서 딱 32주년을 맡게 되었다.

◇ 예술의전당 개관부터 지금까지 32년의 역사를 함께한 최진숙 과장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들 중 하나를 관람하러 갔을 때 우연히 ‘시각예술부’에 소속된 예술의전당 직원인 최진숙 과장을 알게 되었다. 예술의전당에서 자체 기획 중인 전시에 대한 취재를 요청받았는데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간곡하게 부탁하는 모습을 보여 약간의 의아함과 궁금증이 생겼다.

보통의 담당 직원들과는 너무도 다른 태도에 최진숙 과장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처음부터 그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첫 만남에서 주고받은 명함을 통해 최진숙 과장은 지속적인 취재 요청을 보냈고 서너 번의 연락에서 보인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태도에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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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개관일부터 지금까지 32년째 근속 중인 최진숙 과장 / 사진 : 본인제공>

때문에 취재를 핑계로 미팅을 제안했고 만남에 흔쾌히 답해 준 최진숙 과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미팅을 빙자한 인터뷰의 모양새가 되어버린 만남에서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시각예술부 소속의 최진숙 과장은 예술의전당이 개관한 날부터 지금까지 32년째 근무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 직장에서 30년이 넘게 근속하고 있는 직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애티튜드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한 군데의 직장에서 3년 이상을 버텨 본 적이 없는 필자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최진숙 과장이 본인의 일처럼 예술의전당 자체 기획 전시의 취재를 요청했던 것은 몸을 담고 있는 예술의전당 자체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 시각예술부 최진숙 과장이 예술의전당에서 했던 일들

미팅, 아니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예술의전당 여기저기에서 최진숙 과장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자꾸 끊어져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하는 그녀였지만 그 상황에서 느껴졌던 것은 최진숙 과장이라는 사람이 예술의전당이라는 공간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1988년 2월 15일 개관된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개관 기념전인 ‘한국서예100년전’에 계약직인 전시안내원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던 그녀는 같은 해인 6월 1일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고 했다. 최진숙 과장의 첫 업무는 당시 서예박물관 기획전시의 ‘attendant(어텐던트)’ 역할이었다고 한다.

전시장의 안내원과 같은 역할이었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전시장 스태프나 도슨트의 포지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불과 3개월여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단순히 전시장을 지키는 역할만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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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개관일부터 지금까지 32년째 근속 중인 최진숙 과장과의 인터뷰>

서예박물관의 정규직 직원으로 발령을 받은 최진숙 과장은 서예부에서 7년간 예술자료실에서 자료 수집 및 관리 업무와 기획업무를 담당했고, 예술의전당 첫 아카데미 사업인 서예아카데미 업무를 진행하였으며 공연부와 미술부를 거쳐 한가람미술관의 대관 업무를 하였고 2000년에 여직원으로는 처음으로 노조 사무장을 맡았었다고 한다.

2002년부터는 공연장운영팀에서 음악당 리사이틀홀의 대관을 기획하고 2004년부터 공연기획부로 이동하여 국내 첫 브런치 음악회인 ‘11시콘서트’ 기획업무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오페라극장과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 대관, 우수영화시사회 등의 공동주최업무를. 2006년에는 총무팀에서 전시 계약업무와 행사기획 등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종합예술적 기획 경험을 살려 2007년에는 아카데미업무로 3세부터 청소년, 학부모 교육에 이르기까지 특화된 예술교육 교육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 및 운영하였고 ‘융복합예술교육’을 혁신사례로 개발해내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등 예술의전당 곳곳의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도맡아 활약했다고 했다.

◇ 몸담고 있는 직장의 기념일을 챙기는 애사심 넘치는 직원

직전까지의 이야기가 2011년까지의 것이고 이후 10년간의 이야기를 더해야 한다니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최진숙 과장과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예술의전당과 함께한 그녀의 인생 파노라마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고 그녀의 삶 자체가 예술의전당의 살아있는 역사로 한눈에 보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후에도 공연기획부와 전시사업부, 홍보부를 거쳐 지금의 시각예술부까지 파란만장한 10년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무엇보다 예술의전당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많은 것들에 강한 자부심과 애착을 느끼는 듯한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에 감탄을 금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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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개관일부터 지금까지 32년째 근속 중인 최진숙 과장과의 인터뷰>

인터뷰를 다 마치고 나니 이렇게 단발성의 기사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 형식의 자서전을 집필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에 예술의전당 최진숙 과장의 32년을 고스란히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지경이라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줄곧 당당한 커리어 우먼의 말투로 예술의전당에서 했던 일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던 그녀에게 이 이야기들을 기사화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최진숙 과장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에 이러한 장기근속자가 있으며 종합 예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는데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는 설득에 마지못해 허락을 해주었다.

기자의 설득에 두 손 두발 다 들었다면서 기사를 쓸 것이라면 회사의 개관일에 기사가 나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세상 어느 누가 일하는 곳의 기념일을 챙긴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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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개관일부터 지금까지 32년째 근속 중인 최진숙 과장과의 인터뷰>

몸담고 있는 직장에 대한 애사심이 무척이나 크다는 것을 마지막까지 사무치게 느끼게 해준 최진숙 과장이야말로 예술의전당에 있어 살아있는 증인이 아닌가 한다.

군대에서는 부사관으로 33년 근속을 하게 되면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고 했다. 최진숙 과장과 그녀가 속한 예술의전당이 1년 후인 개관 33주년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함께하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