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얼어붙은 이통사 재무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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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처럼 굳은 것 같아요.”

삼일회계법인 출신 베테랑 회계사가 이동통신 3사의 재무제표를 꼼꼼히 살펴본 뒤 한 말이다. 2시간 가까이 파헤쳤지만 특이 사항은 찾지 못했다. 2018년 국제회계기준(IFRS15) 도입으로 기타유동자산이 조 단위로 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일 정도로 변동 폭이 작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자산·부채·자본은 물론 매출·영업이익까지 매년 비슷하다”면서 “조금 과장하면 전년 재무제표에 날짜만 바꿔 이듬해에 제출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에둘러 꼬집었다.

이통사 사업 구조에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해마다 하던 사업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무제표가 기업 속사정을 모두 보여 주진 못한다. 이통사의 사기를 꺾는 각종 규제가 이면에 숨어 있다. 역동성을 갉아먹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통사를 동네북 신세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다. 정부, 정치권, 시민사회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요금 인하 압박을 견뎌야 한다. 시장 논리보다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이통사 최대 수익인 요금 정책을 뒤흔든다. 초고화질·초고음질 시대로 접어들면서 데이터 사용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외면당할 뿐이다.

갈수록 불어나는 주파수 이용 대가도 발목을 잡는다. 주파수 할당·재할당이 발생할 때마다 치솟는다. 매출 대비 부담률이 2011년 3.0%에서 2013년 4.1% 2016년 5.9% 2018년 7.9%까지 올랐다. 미국이 2.3%, 일본이 0.7%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너 배가 넘는 차이다.

그럼에도 5세대(5G) 통신 투자는 계속 늘려야 한다.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통 3사는 5G 주파수를 할당받는 대신 전국에 기지국 15만개를 구축하기로 했다. 목표치의 15%를 3년 내, 30%를 5년 내 달성해야 한다는 의무가 조건으로 걸렸다. 이 조건은 깨진 지 오래다.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는 정부 방침에 맞춰 올해 초 이미 기지국 10만개를 세웠다.

재무제표에 담기지 못한 이통사의 고충은 무수하다.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했다는 화려한 훈장과 달리 회사 기본 정책조차 자유롭게 설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통사가 역동성을 되찾도록 힘을 실어 줘야 한다. 5G에서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쥘 가장 빠른 길이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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