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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 개념을 처음 만들어 낸 경영학자. 세계적 기업인에게 영감을 준 경영학계 구루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23일 6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1997년에 발간한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통해 파괴적 혁신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의 독실한 신자였고, 1971∼1973년 선교사로 한국에 와 춘천·부산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수차례 방한한 지한파 학자이기도 했다. 선교사 시절 '구창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지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방한 때는 일본이 1960~1980년대 성장기 이후 정체기를 맞고 있듯이 한국 기업도 혁신에 나서지 않으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 인도 등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맺은 경영학자의 타계 소식과 함께 그가 주창한 파괴적 혁신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파괴적 혁신은 기업이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해 결국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현재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 매몰돼 시장 판도를 바꿀 새로운 기술을 놓치는 것을 경고할 때 거론된다.

경영 상태가 좋은 기업이 신기술이나 신규 비즈니스 모델과 맞닥뜨리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맹렬히 고수하면서 발 빠른 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표 사례로 대형 복사기 시장을 지키려다 데스크톱 복사기 시장을 놓친 제록스나 메인프레임 컴퓨터 분야에 치중하느라 개인용컴퓨터(PC) 시장을 경쟁자에 내준 IBM 사례가 꼽힌다. 또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하고도 기존에 독식하던 필름시장을 포기하지 못한 코닥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전통 언론도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

반대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 이론에서 깊은 영감을 얻은 기업가로 꼽힌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한 '파괴적 혁신'으로 성공한 대표 사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기업이나 산업 자체의 눈부신 성장도 파괴적 혁신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어찌보면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큰 크리스텐슨 교수가 '파괴적 혁신' 아이디어를 한국에서 얻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발칙한 상상(?)까지 해본다.

실제 우리는 단순하고 저렴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한 후 빠르게 시장 전체를 장악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때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시장에 침투했고, 때로는 니치마켓(틈새시장) 중심으로 시장을 구축하면서 성공 스토리를 썼다.

기업은 물론 개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파괴적 혁신을 통해 현재의 성과를 일궈 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어느 주체도 파괴적 혁신의 사례로 언급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유가 뭘까?

파괴적 혁신이 일지 않는 것은 이미 우리가 제록스나 IBM, 코닥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파괴적 혁신을 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최근 일어나는 혁신에 대한 저항을 보면 이런 가정은 확신으로 바뀐다. 그러나 기존에 가진 것들을 파괴하거나 조정하지 않으면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단순 명료하다. 500원짜리 동전을 움켜쥐고 있으면 1000원짜리 지폐를 잡을 기회는 없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