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현대·기아차 연구개발 핵심 거점인 화성 남양기술연구소 내 현대디자인동을 찾았다. 보안상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이곳에 기자들을 초청한 것은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디자인 품평장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디자인동 3층에 자리한 VR 디자인 품평장은 올해 3월 현대·기아차가 150억원을 투자해 완공했다. 20명이 동시에 VR 장비를 착용한 후 가상 공간에서 차량 디자인 품질과 감성을 평가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VR 디자인 품평장이다.
양희원 현대·기아차 바디담당 전무는 “자동차 개발 과정이 시대 흐름에 따라 버추얼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개발 효율을 고도화하고 품질 검증을 강화할 수 있는 VR를 연구개발에 광범위하게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직접 VR 장비를 착용하고 마치 최고 경영진이 된 것처럼 가상으로 디자인 품평에 참여해봤다. 품평 차종은 지난 10월 공개된 현대차 수소 전용 대형트럭 콘셉트카 '넵튠'이다. 이 품평장은 넵튠 최종 디자인 평가 단계에 처음 사용됐다.
장비 착용 후 화면을 보니 넵튠과 함께 테슬라, 메르세데스-벤츠 등 경쟁사 대형 트럭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멀리서 전체적인 차량 디자인을 볼 수 있고 가까이 불러와 세밀하게 디자인 완성도를 느껴볼 수 있었다. 특히 도심이나 산속으로 배경을 바꿔 실물 자동차를 보는 것처럼 각도나 조명에 따라 생동감 있는 디자인을 볼 수도 있다. 실제 차량에 탄 것처럼 화면을 전환해 차량 내부도 살펴봤다.
VR 품평을 위해 품평장 내에는 36개의 모션 캡처 센서가 설치됐다. 이 센서는 VR 장비를 착용한 평가자 위치와 움직임을 1㎜ 단위로 정밀하게 감지, 평가자가 가상 환경 속에서 정확하게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게 한다. 평가자들은 간단한 버튼 조작으로 차량 부품과 재질, 색상 등을 마음대로 바꿔보며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사용성(UX)이나 시공간별 디자인 적합성을 평가해 고객 눈높이에서 최적 모델을 도출하게 된다.
VR를 활용한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는 향후 출시될 현대·기아차 모든 차량에 적용될 전망이다. 버추얼 개발이란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상의 자동차 모델이나 주행 환경 등을 구축해 실제 부품을 시험 조립해가며 자동차를 개발하는 과정을 상당 부분을 대체하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원하는 대로 빠르게 디자인을 바꿔 품평을 진행할 수 있고 시제작 자동차에서 검증하기 힘든 오류 등을 빠르게 확인하고 개선하며 자동차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한명빈 현대·기아차 디지털차량검증 팀장은 “VR 시설 도입으로 선행 디자인 모델을 일일이 실물로 제작하는 자원 소모를 줄이고, 창의력이 발휘된 다양한 VR 디자인을 풍부하게 만든 뒤 최적화 과정을 거쳐 고객들에게 가치가 높은 디자인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재질과 색상 등을 실제로 구현할 모델을 일일이 제작해야 했던 과정 대부분을 생략하게 돼 제작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는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연구개발 전 과정에 완전 도입될 경우 신차 개발 기간은 약 20%, 개발 비용은 연간 15%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화성=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