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없이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 역점을 두려고 합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3월 미국 진출 계획을 깜짝 발표하면서 경쟁과 규제를 언급했다. 그동안 쌓아 온 실력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신흥개발국 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역력히 묻어나는 발언이다.
사실 지금까지 정 부회장이 이끈 이마트 해외 사업이 성공작이라고 보긴 어렵다. 해외 첫 진출 국가인 중국에서는 현지화 실패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변수가 겹치면서 발을 뺐다. 동남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로 삼은 베트남 사업 역시 2015년에 첫 점포를 내고 나서 4년이 넘도록 출점이 없다. 속도가 더디면서 투자 예산도 기존 계획의 절반으로 줄었다.
중국의 '관시'(관계)나 베트남의 '띵깜'(정감)처럼 사업 외 사회 관계 망 또는 인맥 관계를 중시하는 신흥개발국 환경에 이마트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고전해 왔다. 정치·외교 변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불확실한 사업 환경도 직선 스타일의 정 부회장과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정 부회장이 미국 진출 의지를 보인 것도 이때부터다. 지난해 미국 프리미엄 식자재 유통사인 굿푸드홀딩스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뉴시즌스마켓을 추가로 사들이며 미국 시장 공략 기반을 착실히 다져 나가고 있다.
국내 유통 기업들의 해외 사업이 대체로 비슷한 경제 수준의 아시아 시장에 집중된 점을 감안하면 이마트의 미국 진출은 꽤나 큰 도전이다. 국내에서는 월마트와 까르푸를 몰아냈다 하더라도 현지 선진 시장에서도 통할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럼에도 규제 때문에 시장 공략 속도가 느린 신흥국보다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 미국 선진 시장에서 한번 제대로 붙어 보겠다는 게 정 부회장의 속내다. 무엇보다 미국은 시장 원리가 중시되는 국가다.
바꿔 말하면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온다. 영업 적자에 허덕이다 철수한 중국 시장도 인허가에 발목 잡힌 베트남 사업도 나름대로의 변명이 가능했지만 미국 시장에선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도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현재로선 기대반 우려반이다. 그래도 내심 이마트의 선전을 바라 본다. '우물 안 개구리'로 치부되던 한국 유통업이 글로벌에서 새 성공신화를 써 내려갈 수 있길 기대한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