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대 과기원의 역량 결집을 목표로 둔 '과학기술원 공동사무국'이 출범 6개월을 맞았다. 실효성을 의심하는 일부 시선도 있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또 찾아가는 과정이어서 그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 공동사무국은 과기원의 미래상을 그리는데 음으로 양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과기원 체계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1971년 KAIST 설립 이후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미래인재 양성에 큰 역할을 했지만 더 큰 성장을 이루려면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양적인 규모가 특히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KAIST 조차 역사가 50년이 채 되지 않아 규모가 크지 않다. KAIST가 배출한 누적 석·박사는 5만명도 되지 않는다. 국제 인지도를 높이는데 장애 요소가 된다.
현 체제로는 질적 연구 효율도 떨어지는 상황이다. 과기원별 특성화 영역이 고루 존재하지 않고, 겹치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화학 분야의 경우 4대 과기원에서 모두 주된 연구 영역으로 두고 있다. KAIST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배출하는 영역이 화학인데, 다른 세 곳 과기원도 상황이 같다. 각 과기원에서 2014~2018년 나온 화학 분야 논문 비중은 모두 20%를 넘는다.
공동사무국은 이 같은 문제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출범했다. 과기원 간 업무협력 체계를 이뤄 규모가 작아 발생하는 단점을 상쇄시키고, 영역이 겹쳐 비효율적인 곳을 협력 분야로 탈바꿈해 시너지 효과를 이룬다. 학교 운영을 혁신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김보원 공동사무국장(KAIST 기획처장)은 “과기원이 현재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네 곳이 함께 힘을 모으고 새로운 혁신을 거듭하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며 “공동사무국이 이를 이끌어내는 핵심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공동사무국 제 1책무 '과기원 간 시너지 효과 창출'
공동사무국은 출범 초기부터 과기원 간 시너지 효과 창출을 주요 책무로 소개했다. 물리적 공간으로는 흩어져 있지만 긴밀한 업무협력 체계를 구축, 규모의 경제를 이루겠다는 복안이었다.
연구 분야에서부터 시작했다. 공동사무국은 두 개 이상 과기원 연구진이 참여하는 '과기원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미 예산까지 정부안으로 계상, 당장 내년부터 가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과기원 공동연구 프로젝트는 사회현안 해결에 중점을 둔다. 내년에는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 두 개 프로젝트를 시행할 예정이다.
교육에서도 새로운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4대 과기원 학생이 동시 수강할 수 있는 강의를 창출하는 것이 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KAIST 사회과학 강의를 GIST·DGIST·UNIST에서도 들을 수 있게 하는 식으로 구상하고 있다. 양방향 통신으로 동시 수강, 토의 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이밖에도 4대 과기원 도서관 포털 '스타 라이브러리'와 교수 정보 통합서비스 추진을 지원하고 있다. 과기원 관련 다양한 현안 공동 대응에도 힘쓴다. 최근 논란이 된 전문연구요원 제도 개편과 학연지원금(STIPEND) 제도 정착과 관련 시스템 조율도 공동사무국이 지원했다.
이런 과기원 간 시너지효과 창출 활동은 기관 밖에서도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허재용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인재양성과장은 “과기원이 공동사무국을 통해 힘을 합치면 그동안 퇴색됐던 가치를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과기원 공동 프로젝트 내년 예산안으로 40억원을 계상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기원 혁신방안 수립 핵심역할 수행
공동사무국은 과기원 체제 전반에 강도 높은 혁신안을 마련하는 작업에도 핵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과기원 재도약 방안 마련이 핵심이다.
과기원 재도약 방안은 교육·연구·조직운영 등 과기원 체제 전반에 혁신을 가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후원으로 11명 위원이 이를 논의하는 '과학기술원 전략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공동사무국이 운영을 맡고 있다.
방안은 지난 10월부터 계속 수립 중이다. 8일 킥오프 회의를 시작했고, 지난달 25일 관련 내용을 담은 '과기원 전략보고서' 초안을 마련했다. 28일부터는 각 과기원을 순회하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연말 내 전략보고서 안이 완성될 예정이다.
보고서는 연구·교육혁신과 사회공헌 등 세 가지 축으로 다양한 혁신 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장래에 세계 10대 대학 수준으로 과기원, 혹은 과기원 주요 분야를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서판길 과기원 전략위원장(한국뇌연구원 원장)은 “공동사무국과 함께 각 과기원이 가진 장점은 확대하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도록 전체에 큰 방향을 제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곧 구체적인 안을 도출할 예정으로, 이것이 과기원 발전에 이바지하고 우리나라 미래 경쟁력 제고에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공동사무국과 과기원의 미래는
공동사무국 활동은 미래 과기원 체계 자체가 변하는 일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일각에서 공동사무국 출범이 '과기원 통합'을 위한 전조가 아니냐는 의문을 품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과기원 통합은 전혀 논의된 바 없고, 계획도 없다. 다만 공동사무국 영역 확대와 혁신 작업을 통해 이 밖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여지는 있다.
'유니버시티 오브 캘리포니아(UC)' 계열 대학과 같은 시스템이 예가 될 수 있다. UCLA, UC 버클리 등이 속한 UC계열 대학은 대학별 독립성은 유지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공동 발전을 도모한다. KAIST를 비롯한 과기원 역시 이런 예를 본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독립성은 유지하면서 각 과기원 총장 간 협의회 및 상호 정책협의 활성화를 통해 공동사무국이 이룬 시너지 효과를 더욱 배가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상선 키스텝 원장은 “공동사무국 체제로 많은 성과가 도출되고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당장은 아니어도 훗날 UC 체계와 같은 새로운 가능성을 얘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물론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표>과기원 공동사무국 설치 개요
<표> 과기원 역사 및 배출 졸업생 규모
<표>과기원 공동사무국 주요 업무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