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희망프로젝트]<638>'소부장'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안보 문제를 이유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생산할 때 쓰이는 불산, 포토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를 개별 수출 허가 품목으로 전환했습니다. 8월에는 한국을 수출 관리 우대 대상국을 뜻하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배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질적인 수출 제한이라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해당 조치 후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이 심각한 생산 차질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됐습니다. 대체 가능한 공급사를 찾는 과정은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생태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우리 정부는 첨단 소재뿐만 아니라 장비, 부품 등 전체 산업 후방 생태계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을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소재부품장비시장지원과'도 신설했습니다. 일본 등 특정 국가나 특정 해외 기업에 크게 의존하는 분야를 파악하고 중장기 관점에서 국산화하거나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래 성장성을 고려해 꼭 필요한 핵심 기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침이지요.

취약한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이른바 '소부장'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의존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또 다시 이런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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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경기도 안산시 율촌화학에서 제2차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가 열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디스플레이용 필름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안산=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Q:'소부장'은 첨단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A: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첨단 제조기술 끝판왕'으로 불립니다. 1나노미터(㎚)는 머리카락 한 올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데요,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10~20나노미터 굵기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회로 선폭을 적용해 반도체를 생산합니다.

소부장은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뿌리' 역할을 합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산업에서 미래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입니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전체가 무너지는 것과 같지요.

예를 들어 성능 좋은 장비가 있더라도 해당 생산 단계에 최적화된 소재가 없으면 제품을 만들지 못합니다. 설령 만들 수 있더라도 품질이 떨어져 판매하기 힘든 수준의 결과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 반도체 제조사가 세계 1·2위이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주요 소재 대부분을 일본 기업이 공급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술력과 신뢰성이 검증된 소재를 사용하면 생산한 100개 중 99개가 품질 합격점을 받는데, 그렇지 않은 소재를 사용하면 자칫 100개 중 10개도 품질 기준을 통과하기 힘든 사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Q:한국의 '소부장' 산업 경쟁력 수준은 어떤가요?

A:세계 소재·부품·장비 기업 경쟁구도를 살펴보면 주로 수십 년간 기술을 축적해온 글로벌 기업 위주로 형성돼 있습니다. 특히 일본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일본은 수십 년간 기술 연구개발에 힘을 쏟는 특유의 장인정신 기반 제조업 문화가 강점이라고 평가받습니다.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을 꾸준히 연구하는 것도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지요. 이런 영향으로 일본에는 세계 소재·부품·장비 시장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여러 기업이 있습니다.

UN 무역통계 기준으로 2017년 세계 소재·부품 수출시장 상위 10개국을 살펴보면 중국이 2010년부터 1위를 유지하고 있고 독일 2위, 미국 3위입니다. 일본은 4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홍콩과 경쟁하면서 6위를 기록했습니다. 홍콩이 물품을 수입해 가공을 거쳐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중계 무역국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실질적인 5위 소재·부품 수출국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이에 비해 실질 경쟁우위를 보면 한국의 우위 업종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2010년 소재·부품 경쟁우위 업종이 11개 중 7개였는데 2017년에는 4개로 줄었습니다. 중국은 8개에서 9개로 늘었습니다. 일본은 2010년 11개 업종에서 모두 1위였는데 2017년에는 9개로 다소 줄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난 20년간 소재·부품 산업 육성책을 펼치면서 상당한 국산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합니다. 높은 일본 의존도도 어느 정도 낮췄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경쟁력은 여전히 일본·독일 등과 비교하면 미흡합니다. 중국이 새로운 소재·부품 강자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Q:정부는 '소부장' 산업 발전을 위해 어떤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나요?

A:한국은 선진국의 성장 전략을 바탕으로 외형 중심 성장을 이뤄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조업이 국가 주력산업인 만큼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소재·부품·장비 산업과 기술 경쟁력을 보강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합니다.

최근 우리 정부는 100대 핵심품목을 선정하고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연구개발에 5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핵심 품목 중심으로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하면서 맞춤형 투자를 실행하고 투자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또 대학·연구소의 연구 결과물을 기업이 실제 제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과정을 혁신하기 위한 실행 방안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략을 바탕으로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자립 역량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목표입니다.

주최: 전자신문

후원: 교육부·한국교육학술정보원

◇축적의 시간-서울공대 26명의 석학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지음, 지식노마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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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은 서울대 공대 석학 26명이 참여해 한국산업 미래를 위한 제언을 담았다. 각 분야 전문가를 통해 한국 산업이 겪고 있는 문제 원인을 파악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오랫동안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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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인구 감소 등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근대화를 재검토해야 할 시기라고 지적한다. 한국이 일본과 비슷한 경제성장 역사를 가진 만큼 일본 사례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이루고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2019년 일본 과학저널리스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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