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 초안이 공개됐다.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와 콘텐츠제공 사업자(CP)간 지위 역전, 망 투자비 분담 필요성 대두, 국내외 망 이용대가 역차별 등 복잡한 배경에서 탄생한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이 갈등 해결을 위한 준거가 될지 관심이다. 글로벌 CP 규제집행력 확보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보다 높은 차원의 입법 활동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불공정경쟁 차단·이용자피해 예방
방송통신위원회는 페이스북 사태에서 확인된 것처럼 망 이용계약 분쟁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고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등 불공정경쟁이 야기된다며 가이드라인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장실패 시 정부가 개입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5장 14개 조항으로 구성된 가이드라인에는 망 이용계약 기본 원칙, 불공정행위 유형, 이용자보호 규정을 담았다.
망 이용계약을 체결할 때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 되며 특별한 이유 없이 사업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다.
ISP가 망 이용대가 인상을 요구할 때는 사유를 제시하도록 했고 CP는 인터넷 트래픽 경로 변경 시 이용자 피해가 예상되면 ISP에 사전 통보하도록 했다.
가이드라인은 망 이용계약을 둘러싼 불공정행위 유형과 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제시했다.
특정 계약을 강요하거나 계약 지연 또는 거부하면 불공정행위로 판단하기로 했다. 불공정행위 여부를 판단할 때는 인터넷망 비용분담 구조, 콘텐츠 경쟁력, 대량구매 할인율, 제3의 망 이용계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했다.
방통위는 가이드라인 초안을 위원회 보고안건으로 상정해 연내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최종안이 확정되면 1개월 후 시행된다. 내년 초 시행이 유력하다.
◇문구 하나에 예민…ISP vs CP 갈등 여전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ISP와 CP는 가이드라인 문구 하나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양측 입장 차가 큰 조항은 ISP와 CP 의무를 규정한 제10조와 제11조다.
가이드라인 제11조에서는 CP가 인터넷 트래픽 경로를 변경할 때 이용자 피해가 예상되면 ISP에 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CP는 망 품질 유지 의무가 ISP에 있으므로 CP가 망 품질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반발했다. 의무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ISP는 이 조항이 CP에 '면죄부'를 준다며 우려했다. CP가 통보만 하면 마음대로 트래픽 경로를 바꿔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다. 트래픽 경로 변경으로 이용자 피해를 유발했던 페이스북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제공한다'와 '사전 협의한다'라는 문구를 놓고 양측이 막판까지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ISP는 한 발 더 나아가 CP 의무에 '이용자보호'와 '서비스품질유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CP와 정반대 주장이라 진통이 예상된다.
CP는 가이드라인 제5조에서 망 이용계약 요청을 서면으로 해야 한다는 조항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사적계약은 구두로도 가능하며 서면계약 요구는 향후 정부 조사 시 편의를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법령 해석 기준···입법 기초자료로도 활용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지도 관심사다. 방통위는 가이드라인에 법적 강제성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글로벌 CP가 가이드라인을 무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망 이용계약 관련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잘잘못을 따지는 과정에서 관련 법령을 해석하는 데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영향력을 확보했다.
망 이용계약을 둘러싼 국내외 역차별 해소를 위한 법안이 다수 국회 제출된 가운데, 가이드라인은 입법 핵심 참고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공간적 한계 탓에 글로벌 CP에 대한 집행력 한계는 분명하다”면서도 “가이드라인은 향후 법령 해석과 입법 기초가 되며 시장에 신호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이 가장 먼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례는 넷플릭스 망 이용계약과 관련해 SK브로드밴드가 방통위에 제출한 재정신청이다.
방통위는 재정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넷플릭스 본사에 통보하고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두 회사 중 누가 잘못했는지 따질 때 가이드라인이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이드라인이 글로벌 CP에도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회 제출된 역차별 해소 법안 역할이 중요하다.
인력, 사무실, 서버 등 규제기관이 강제력을 행사할 만한 법적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가이드라인도 힘을 잃을 위험이 있다.
CP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넷기업협회는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 자체는 실효성이 부족하므로 결국 다음 단계는 입법 추진이 될 것”이라면서 “입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