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오는 9일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경제활력 회복에 '올인'한다. 전반기에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 경제 세바퀴론을 앞세워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아직 국민이 체감할만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미-중 무역갈등, 브렉시트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데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까지 겹치며 국내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대외충격 파고를 막는 '방파제'로 출범 초기부터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산업 육성책을 하나씩 추진했다. 전반기에 뿌린 산업정책 과제를 어떻게 완수하느냐에 따라 정권의 경제정책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속도 더딘 '혁신성장'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에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주축을 이뤘다. 이를 기반으로 올 상반기까지 견조한 소비 증가세를 이끌었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지난해 2.8%를 기록하는 등 2005년 이후 13년 만에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했다. 공정경제의 경우 초기엔 '재벌개혁'으로 대변됐지만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이끄는 정책으로 초점이 맞춰졌고, 최근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혁신성장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집권 1년차에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야심차게 신산업 분야 투자 확대 등에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출발부터 위상·권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8월 '데이터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데이터 가치사슬 전주기 활성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등을 추진했으나 진척이 없다. 규제 샌드박스 등 규제개혁 작업의 속도도 더뎠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 “혁신성장을 산업정책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제조업 고도화와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추진해 왔지만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아직도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요구했다. 지난달 출입기자 간담회에서도 “좋아지는 기미는 보이지만 아직도 국민이 다 동의할 만큼 체감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가야할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그간 산업 정책 시동을 거는데 집중했지만 이제는 가속 페달을 밟아 성과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강조했다.
◇지역경제투어로 '혁신성장' 행보
문 대통령은 혁신성장 등에서 지적이 이어지자 지난해 10월부터 직접 지역을 돌며 경제 살리기에 뛰어들었다. 광역단체별 경제 거점을 방문해 각각에 맞는 산업 분야 하나씩을 골라 정부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다. 지역에서부터 혁신과 경제 활력이 살아나야 대한민국의 경제 활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봤다. 지역 경제투어는 대통령이 직접 경제를 챙긴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정 방향의 중대한 변화를 상징한 행사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총 12차례 지역경제 투어 일정을 소화했다. 한 달에 평균 1곳을 찾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발로 뛰며 그린 산업 정책은 사실상 '혁신성장' 지도다.
지난해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전북 새만금), 철강 등 주력산업의 첨단화(경북 포항), 제조업르네상스(경남 창원)가 화두였다. '큰 그림' 중심으로 지역을 찾았지만 올해부터는 구체적 분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부가 3대 중점 혁신산업으로 선정한 바이오헬스, 미래차, 시스템반도체 분야 현장을 연이어 방문했다. 1월 수소경제(울산)를 시작으로 데이터·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대전), 침체된 구도심 재건을 통한 도시재생(부산), 로봇산업과 물 산업(대구), 바이오산업 전략(오송), 디스플레이 등에 참석했다. 전국 투어 일정 중간에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아 시스템 반도체 비전선포식을 가졌고, 최근 충남 아산에서 가진 삼성디스플레이 투자발표 현장을 찾아 격려했다.
지난달에는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해 미래차 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이례적으로 개발자 행사인 '네이버 데뷰(DEVIEW) 2019'에 참석해 “인공지능(AI) 정부가 되겠다”면서 “포괄적 내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분야별 장벽을 과감하게 허물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들 기업 방문까지는 경제투어로 포함하지 않고 있지만 올해 하반기 들어 평균 세 차례 경제행보를 가졌다. 이 같은 행보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 여론도 컸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주요 계기로 작용했다. 소재부품산업 분야 혁신의 동력이 됐다.
◇'혁신성장'으로 무게 추 옮겼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혁신 역량이 곧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제2 벤처 붐'을 통한 혁신창업 국가를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도 예산을 혁신경제 정책에 전력 투입하고, 기업 환경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 기업 투자에 더 많은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정권 후반기 정책의 무게 추를 혁신성장으로 옮겼지만 성과를 내는 것이 관건이다. 그간 뿌린 혁신 씨앗이 산업에서 제대로 꽃 피울 수 있게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는 게 일순위 과제다. 기업인과의 스킨십도 늘려야 한다.
이무연 연세대 교수는 “혁신은 결국 속도감 있는 규제개혁과 시의적절한 진흥정책이 균형 있게 추진돼야 한다”며 “당·정이 국회 설득을 위해 더욱 힘을 모으고, 국가 전략 차원에서 산업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묘안을 지속 보완, 발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혁신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만큼 정부가 보다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신산업에 따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관리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결국 정책 주도권을 쥐고 갈 컨트롤타워를 누가, 어디서 맡을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며 “정책 사명을 충분히 이해하고 추진할 책임 의식과 의지를 갖춘 전담 조직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