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구성원과의 교감을 통해 스마트 캠퍼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고려대는 구성원이 가장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스마트 캠퍼스로 변화합니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에서 만난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기술 중심 사회로 변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정 총장은 '기술'이 아닌 교내 '구성원' 중심으로 스마트 캠퍼스를 구현하고 있다. 정 총장은 “교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여러 번의 설문을 거쳤고, 구성원이 가장 원하는 것들을 우선으로 스마트 캠퍼스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르면 다음 달 말 SK미래관에서 빈 강의실 대여 서비스가 시작된다. 공강 시간 학생은 지나가다 스마트폰을 강의실 출입장치에 갖다 대면 빈 강의실을 즉시 이용할 수 있다. 정 총장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이용현황을 마일리지화하고 이를 실제 금융서비스와도 연결할 것”이라며 “향후에는 지역주민도 고려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을 압도하는 신기술을 내놓기 보다는 구성원, 나아가서는 지역주민까지 만족하는 정책을 중심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정 총장은 “SK미래관에서 우선적으로 스마트 기술을 적용하고, 구성원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내년 전체 고려대 캠퍼스에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는 내년 구성원 참여형 스마트캠퍼스로 탈바꿈한다.
정 총장으로부터 스마트 캠퍼스, 창업, 산학협력, 대학의 위기 극복 방안 등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담:이호준 전자신문 정치정책부장
-고려대 스마트 캠퍼스에 대해 설명해달라.
▲구성원 참여형 스마트캠퍼스로 설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구성원의 생각을 담아내면서 미래기술을 접목하여 생활공간이자 가치창출의 공간이 되는 미래형 캠퍼스를 만들고자 한다.
모든 구성원이 설문을 통해 함께 스마트 캠퍼스에 참여했다. 쌍둥이처럼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트윈 캠퍼스라는 관점으로 고려대 5개 캠퍼스(서울 캠퍼스,세종 캠퍼스,안암병원캠퍼스,구로병원캠퍼스,안산병원캠퍼스) 데이터와 ICT·IoT 인프라를 연결할 것이다.
이를 위해 ICT/IoT 캠퍼스 위원회를 설립했다. 성공적인 스마트 캠퍼스 구축을 위해 안문석 전자정부추진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을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첫 단계로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중점을 뒀다. 취임 후 6개월간 기획과 구축을 통해 데이터허브 사이트를 시험 오픈했다. 데이터 허브는 기본적으로 데이터웨어하우스와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하는 분석지원 플랫폼으로 운영된다. 기술적 구축과 더불어 구성원과 교감하는 소통통로로서 데이터 커뮤니티를 구현할 것이다. 창업하고자 하는 구성원은 학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또 지난 6월부터 매월 첫날 'Data@KU'라는 뉴스레터를 발간했다. 데이터 기반 환경과 스마트캠퍼스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마중물을 마련했다고 본다.
내년 고려대는 순차적으로 스마트 캠퍼스로 바뀔 것이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 전달하는 기술, 그것을 분석하는 기술, 정책으로 일반화시키는 기술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것이 스마트캠퍼스다.
-요즘 많은 학생이 창업에 도전한다. 창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는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페이스북, 아마존, 알리바바 등이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현재 미국 상장 기업 중 상위 10개 기업 안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창업'은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생존전략이자 초연결사회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필수 과제가 됐다.
기술과 사람을 잇는 '연결의 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고려대도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 DNA를 심어주기 위해 교육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상생'과 '협력'의 자세를 갖춘 창의인재 양성을 목표로 이중전공과 융합전공 활성화, 기초교육 강화, 창업지원을 확대했다.
올해 2학기부터는 '기술창업융합전공(Technology Entrepreneurship)'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기술창업융합전공'은 대학 내 연구실이나 실험실에서 구현되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로 우리 생활 속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이다.
대학 내 창업은 학부 중심 창업과 실험실(교원) 창업 둘로 나눠진다. 교원 창업은 좋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것이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본다. 오랜 시간 연구를 하면서 축적된 지식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접목됐기 때문이다.
학생 창업은 실패하는 경험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학부생은 창업해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패하는 경험을 통해 '내가 부족하구나, 공부해야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 실패해도 그 과정에서 기업가 정신이 만들어진다. 이런 경험을 한 학생이 대기업에 취업하면 성과가 다르다. 스스로 경험하면서 동기 부여가 되며, 자기 주도적인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 고려대는 산학협력단, 크림슨창업지원단 등을 중심으로 인큐베이팅부터 액셀러레이팅까지 창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고려대의 산학협력 지향점은 무엇인가.
▲산학협력이라는 표현보다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산학협력이라고 하면 '악수'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예전처럼 기업체가 대학에 형식적으로 재정지원을 하던 시절은 지났다. 기업도 가능성 있는 교수에게 전폭적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양자간 혹은 다자간의 실질적 성과를 내려면 융합이 필요하다. 바로 상대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전에 양 기관에 대한 상호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인적교류가 활발해야 하고, 그래야 실질적 협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고려대는 연구자 중심의 연구지원 체계를 더욱 강화해 우수한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기술사업화, 기술창업, 국제 기술 협력을 증진해 연구·산학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원천 기술개발에 집중하여 연구결과물의 질적 관리 체계를 선진국 수준으로 구축하고, 기업의 요구를 공유·유도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여 개방형 산학협력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아울러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여 고려대가 보유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 기술에 대한 특허를 분석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여 산업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산업생태계 기술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구축할 것이다.
-최근 AI대학원을 개원했다. 타 대학과 구분되는 고려대 AI대학원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고려대 AI대학원은 AI 기술을 응용하는데 중점을 둔다. 단순히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보다 응용 분야에 중점을 둔다면 미국,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려대 AI대학원의 핵심 연구 분야는 딥러닝, 컴퓨터비전, 자연어처리, 음성인식, 빅데이터, 신경망 등과 'AI+X(헬스케어, 금융, 지능형에이전트, 게임, 자율주행, 국방 등)'다. 3개월 이상 국내외 AI 관련 대학, 연구소, 기업과 국제 공동연구 또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지원할 예정이다.
고려대 AI대학원은 혁신적인 인공지능 기술개발을 선도하는 학술 인재양성, 기업 수요 기반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산업 인재양성,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기술창업 인재양성을 교육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국제적 수준의 학사관리를 통해 효율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다수의 AI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한 산업체 현장 실습을 통해 실무 경험을 축적한다. 자기주도적 교육과정 설계를 통한 능동적 학습 능력 제고를 통해 기술창업 역량을 강화하고자 한다.
해외 유수 대학, 연구소와의 네트워크 및 AI 선도 기업과의 산학협력 체계를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 역량을 갖춘 박사급 AI 핵심 인재를 양성한다.
-등록금은 10년째 동결됐고, 학령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대학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존 대학의 재원은 크게 등록금, 법인전입금, 기부금, 교원들의 산학협력(연구비 수주)에 따른 오버헤드(간접비) 등이다. 10년 간 등록금은 동결됐고, 대다수 대학이 어렵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기부시 세제개편 등 제도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기부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기술사업화를 통한 수익창출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다. 미국의 대학들도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미미하다고 안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앞서 말한 교원창업과도 연계된다.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전문가들이 실제 투자하는 것을 대학에 접목시켜 성과를 내야 한다.
결국 대학 경쟁력은 '사람'이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은 사람이다. 우선 우수한 교수를 데리고 와야 한다. 잠재력이 있고 고민하는 험한 길을 가려는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돼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술 중심의 사회에서 기술을 만드는 것도 사람, 기술에 영향을 받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을 받으면 힘을 낸다. 단순한 원칙이지만 상대를 더없이 소중한 존재로 여길 때 구성원들이 더 힘을 낸다. 구성원을 소중히 하는 문화를 확산시켜 개인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의 대학으로 만들어나가겠다.
○정진택 총장은…
고려대 114년 역사상 최초의 공대 출신 총장이다. 올해 2월 말 고려대 제20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성남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에서 대외협력처장, 공과대학장, 공학대학원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한국유체기계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한국연소학회 총무이사, 한국가시화정보학회 사업이사, 고려대 공학교육연구센터장, 고려대학교 테크노콤플렉스 원장,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으로 활동했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