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을 수출관리 우대조치 대상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2차 경제보복 조치를 시작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또 다시 중대한 외교 시험대에 올랐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경제·안보분야 전면전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어 집권 이후 최대 난관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 어떠한 특단의 돌파구를 마련해 낼지 주목된다.
◇외교적 강도 높은 '맞불 카드' 내놓을지 주목
문 대통령은 우선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린 당일부터 청와대내 상황점검반과 정책 실행을 담당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실시간 상황 대응에 나섰다. 3일 임시 국회를 통과한 5조8269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도 신속 집행해 급한 불을 끄겠다는 방침이다. 이번에 통과된 추경안에는 일본 경제보복 조치에 따른 피해 지원 예산 2732억원이 포함됐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에 부품·소재·장비를 의존해온 산업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이 추가로 발표된다.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흔들리지 않도록 근본적인 산업구조를 바꾸는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당장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경고한 바와 같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 이상의 강한 '맞불 카드'을 제시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사실상 미국의 중재안도 일본이 거절한 만큼 이번 일본의 조치에 대해 강도 높은 맞대응 카드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선 정부는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것에 속도를 낸다. 또 일본산 상품·서비스에 시장접근을 제한하고 관세 인상 조치 등도 추진한다. 일본이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은 만큼,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맞대응 방안도 논의 중이다.
핵심은 문 대통령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연장 거부 카드를 검토할지 여부다. 일본 정부는 GSOMIA 갱신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만큼 우리 입장에서 외교적 협상의 '지렛대' 역할로 무게감 있게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양국의 통상 문제를 넘어 동북아 안보 지형에까지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에 더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문 대통령으로서 GSOMIA 파기에 손을 대는 것이 한미일 안보협력에 있어 역행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아직까지 이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공식적으로 내비친 적이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향후 반응에 따라 충분히 쓸 수 있는 카드라는 게 청와대 내 공통된 인식이다.
◇국제사회 향한 여론전 '총력'
우선 문 대통령은 단기적으로 대화를 통한 해결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국무회의에서도 “한일간 파국의 길을 멈출 방법으로 일본 정부가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하고, 대화의 길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밑 협상을 통한 돌파구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국제사회를 향한 여론전에도 힘쓴다. 최근 WTO 이사회에서 두 차례 국제사회를 향해 여론전을 펼쳤다. 주말 사이 진행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장관회의를 포함해 향후 예정된 다자회의에서 국제사회에 동조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단합도 독려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 “일본에 지지 않겠다”라며 향후 대응 과정에서 '국민 단합'의 중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5일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다시 이같은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참모진들은 연이어 일본 정부 비판내용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여론전을 이어갔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발언에 일본의 외무 부대신이 무례하다는 비난을 했다는 보도가 있다”며 “일본의 무도함이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 수석은 “미국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으며 협상을 하는 '스탠드스틸'을 제안했음에도 일본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며 “일본 관료들의 거짓말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종건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도 “'우리는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한마디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한 역사선언”이라고 말했다. 조국 전 민정수석,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등도 페이스북에 일본 불매운동 관련 기사 등을 소개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