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어떻게든 물량을 확보하겠지만, 중소기업은 물량 조달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반도체만이 아닙니다. 부품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가장 밑단에는 일본산 소재부품에 의지하는 품목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일본 화이트리스트 발표를 하루 앞두고 전자업체 대표가 기자에게 토로했던 얘기다. 결국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국내 기업의 공급망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치논리가 산업계를 덮쳤다. 일본은 안보를 핑계로 국내 산업 근간을 뒤흔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내 각계에서는 의연한 대처를 주문하고 있지만, 현장 기업인 대부분은 막막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외부 이슈에 기업들이 수년간 유지하던 원료 체인망이 하루아침에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몽니에 산업계가 받는 충격은 크다. 일본산 부품과 소재는 국내 산업계에 깊게 뿌리내렸다. 모터, 기판, 센서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품에서 일본 영향력이 상당하다. 부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일본산 소재가 쓰이기도 한다.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완제품에 일본산 부품이 들어가는 건 없다”면서도 “부품 공급사가 일본산 부품, 소재 의존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향후 수출 규제 위험이 큰 산업군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정밀장비업체 대표는 “십수년간 풀지 못한 숙제를 단 몇개월 만에 찾을 수 있겠냐”며 허탈해했다.
말하기 좋은 '국산화'나 '내재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재부품 변화로 공정 과정, 제품 신뢰 확보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대안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막상 대안을 찾더라도 '뚝딱'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우리는 대응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 일본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취약한 부분에서는 냉정한 진단과 대처가 필수다. 일본산 의존이 불가피한 품목에서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고 다른 거래선을 찾아야 한다. 국가 분쟁에서 기업 역할은 제한적이다. 정부에서 산업계에 더 실질적인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