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융합연구, 미래 의료 실현을 위한 병원 경쟁력

Photo Image
윤도흠 연세의료원장

두 학문이 연계돼 혁신 연구 성과를 일궈 내는 것을 융합 연구로 알고 있다. 실제 융합 연구를 담당하는 학자들은 '다학제 간 연구'라 부른다. 더 넓게 보면 융합 연구는 초학제 연구 개념을 포함한다. 초학제 연구는 예를 들면 기후 변화, 에너지, 건강 등 다양한 분야가 연계돼 현실 문제 해결을 연구 주제로 삼는다. 최근에는 다양한 연구 주제로 이종 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의료 분야도 몇 해 전부터 정보통신기술(ICT), 공학 등과의 융합으로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의료 부문에서 융합 연구의 궁극 목표는 질병의 정확한 진단, 치료, 예방이다.

최근 의료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융합 연구 주제는 인공지능(AI)이다. 국내 중·대형 병원에서는 AI 기술 상용화를 위해 대학·연구소·기업과 협력해 연구 조직을 구성하고 대형 국가 연구 과제를 수주해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AI 알고리즘은 주로 의료영상 판독을 분석해서 질병 진단 보조시스템과 개인 영양 상태나 생활패턴 등 정보를 바탕으로 성인병 발병 확률을 예측하는 건강관리서비스로 볼 수 있다. 이 기술이 의료 분야에 적용되면 병원에서는 업무 부담을 줄이고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는 AI 기반 음성녹취·문서화 서비스를 도입했다. 그동안 판독 내용을 녹음해서 전사자가 내용을 듣고 타이핑해 문서화했으며, 이 내용을 영상의학과 의사가 다시 확인해서 마지막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 보냈다. 이 같은 과정이 생략되고, 영상의학과 의사의 판독 내용이 그대로 문서화된다. 영상의학과 의사 판독 과정이 대폭 줄어들면서 환자는 더욱 빨리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어 치료 시기를 단축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는 융합 연구는 성공 여부에 따라 사회 파급력이 크고, 새로운 학문의 발생 토대가 된다. 세브란스병원이 처음 도입한 로봇 수술기는 비뇨기과 등으로 사용이 제한된 미국과 달리 위암, 대장암, 부인암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그러나 연구자는 구체화된 정의에서 연구, 설계, 수행까지 많은 과정을 직접 극복해야 한다. 문제는 잘 만들어진 개발품이 상용화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실제 국내 암 치료 분야에서 AI 열풍을 일으킨 'IBM 왓슨 포 온콜로지'는 융합 연구 상용화의 어려움을 잘 보여 준다. 수요자인 환자와 의료진, 개발자인 IBM 기술 이해 및 기대치가 각자 달랐다. 의료진과 왓슨 포 온콜로지가 제안한 치료법의 들쭉날쭉한 일치도가 비용 대비 효용성에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기술 원인은 데이터 부족이었다. 왓슨 포 온콜로지가 인종마다 다른 질병의 양상과 보험 등 국가마다 다른 의료 체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은 개인 의료 정보를 포함하기 때문에 법으로 민감한 사안이고, 비용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성공 사례가 있는 반면에 왓슨 포 온콜로지 사례처럼 당장 현실 적용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의료 융합 연구에서 병원은 연구 기획자이자 수요자이다. 현실의 미충족 의료 수요에 현안을 구체화해서 도출하고, 연구를 수행함과 동시에 중장기 연구 콘텐츠를 기획하고, 그에 필요한 기간 시설을 마련하는 것 또한 병원의 역할이다. 실제 의료 분야는 그동안 융합 연구 경험을 통해 의공학, 임상통계, 바이오 인포매틱스, 의료기기학 등 학과나 학부·대학원 과정을 신설하며 인력 및 물자 인프라를 구축했다. 인프라 활용을 통해 로봇수술처럼 개발된 기술의 현장 검증을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하고, ICT를 현장에 도입하는 검증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병원은 융합 연구로 환자를 치료하는 일차원 기능을 넘어 해외 환자와 신약 개발이라는 의료 산업화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신기술을 수동으로 받아들이던 병원이 이제 신기술 아이디어 원천이자 제품 생산 현장 역할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미래 의료의 답은 병원에 있다. 병원은 융합 연구 환경을 구축하며 축적해 온 경험과 지식을 종합 고찰하고 정밀 분석해서 실질 기획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 ICT 등 각 분야에서는 병원을 활용한 다양한 융합 연구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에게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다.

윤도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severance@yuhs.ac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