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항공 물류사업을 통해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항공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49년 아버지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2003년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인 2000년대 초반은 국내외 항공산업은 큰 위기였다. 2001년 9·11 테러, 2003년은 이라크 전쟁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잇따른 악재 속에서 세계 항공사들은 구조조정, 항공기 주문 축소 등 최대한 움츠렸다. 하지만 고 조 회장은 이 같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였다. 나중에 경기가 회복될 때 맞춰 항공기를 제때 들여오지 못하게 되는 미래를 진정한 위기로 본 것이다.
대한항공은 2003년 A380 초대형 항공기와 2005년 보잉787 차세대 항공기 도입을 연이어 결정했다. 조양호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2006년 이후 세계 항공 시장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항공사들은 앞 다퉈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항공기 제작사가 넘치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경쟁사들은 새로운 항공기 도입까지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적시에 차세대 항공기들을 도입한 것이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이게 됐다.
2018년 기준 대한항공 매출액은 12조6512억원으로 조 회장 취임 전 해인 1998년 매출 4조5854억원보다 3배 가량 늘어났다. 같은 기간 자산 또한 1999년 7조8015억원에서 24조3947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보유 항공기 대수 역시 113대에서 166대로, 취항국가·도시 숫자는 27개국 74개 도시에서, 44개국 124개로 성장했다.
해운회사인 한진해운 역시 장기적 세계 해운 불황 속에서도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매출이 2배 넘게 느는 실적을 냈다. 한진은 2003년 매출 6153억 원을 거뒀지만, 2017년엔 매출 1조6117억 원을 내며 회사의 외형을 성장시켰다.
고 조 회장은 생전 부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輸送報國)' 유훈을 강조했다. 그는 사무실이 아닌 현장을 누비는 스타일의 '실무형' 경영자였다. 취항지를 결정할 때 그룹 총수로서 보고만 받는 게 아니라 직접 사전답사를 한다. 허름한 숙소에서 자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18일 동안 6000마일(9600km)을 손수 운전하며 미국 곳곳을 살펴본 일화로 유명하다.
또 국적 항공사 오너로서 재계에서 가장 폭넓은 활동으로 국익에도 큰 기여를 했다.
2014년부터는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아 미국과 경제교류의 가교역할을 했다.
한국과 프랑스 관계에도 기여했다. 고 조 회장은 '한-불 최고경영자클럽'의 한국 측 회장으로 활동하며 화학, 신소재 분야 등에서 두 나라의 공동연구와 개발협력을 추진했다. 또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을 후원하는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에도 앞장섰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여 받았다.
2011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까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고, 2014년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준비에 힘썼다. 2016년 5월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기까지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2년 가까이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그 동안 IOC 위원 110명중 약 100명을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이러한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