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리더의 교체는 어려운 주제다. 당장의 실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부분의 경영층은 주저한다. 연중에는 엄두도 못 내고, 해가 바뀔 때마다 고민을 반복하지만 사고가 터지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를 때까지 모호한 '동행'을 이어 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영층의 신뢰는 약해져도 숫자를 책임지는 일선 영업 리더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국 회사는 일선 영업 리더를 계륵(鷄肋) 같은 존재로 여기고, 영업조직 당사자들은 불만을 가득 안고 골목대장이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영업팀장 등 많은 영업관리자가 있는 기업도 영업 담당 임원은 밖에서 찾는다. 새로 설립된 회사라면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경험 있는 리더를 찾아야겠지만 10년, 20년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는 회사가 많다. 경영층의 영업 리더에 대한 불신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누구의 책임일까?
일차 책임은 당연히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층 몫이다.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영업조직 수장도 반드시 기존 조직 내에서 발굴해서 길러야 한다.
그러고 싶지만 마땅한 자원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라고 항변하겠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회사가 원칙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개발했다면 마땅한 리더가 없겠는가?
모든 것을 단기실적에 의해 판단하면서 영업 조직이 달라지길 바라는가? 눈앞의 작은 손실에 매달려 변화와 혁신을 머뭇거린 것은 누구였는가? 영업조직을 살리고 제대로 된 리더를 만드는 주체는 회사의 경영층이다.
영업 직원 인터뷰를 하다 보면 '회사는 영업조직을 목표 달성 도구로만 생각한다'는 푸념을 흔히 듣는다. 회사는 '사기진작, 동기부여 프로그램' 또는 인센티브로 이런 불평을 덮으려 하지만 이것은 천식 환자에게 감기약을 먹이는 것 같은 처방이다. 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할 주제는 영업조직의 리더, 특히 일선 관리자다.
좋은 선배, 어찌됐든 숫자는 책임지는 사람이 상징이던 이제까지의 영업리더 모델에 ABC가 더해지면 회사 미래를 바꾸고 영업조직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혁신형 리더가 될 것이다.
차별화된 영업리더 'ABC'. 첫째 양손잡이(Ambidexterity) 영업리더가 돼야 한다. 흔히 영업직원을 '농부'와 '사냥꾼'으로 구분한다.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영업, 기상이변 같은 변수는 있어도 대체로 안정되고 위험 요소가 적은 영업을 '농부형' 영업이라 한다면 불확실성을 전제로 집요함이 요구되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사냥꾼형' 영업이라 할 수 있다. 일하는 방법, 성공 요소도 다르고, 필요한 핵심 역량도 다르다. 직원이라면 특성에 따라 해당 영역에 배치시키면 되지만 리더라면 두 가지 요소를 함께 갖춰야 한다.
고객관계 유지 능력뿐만 아니라 통찰력이 뛰어나야 하며, 따스함과 냉정함을 상황에 맞게 구가해야 하고,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치밀한 기획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 이런 리더가 양손잡이 리더다.
둘째 균형(Balance)을 잃지 않는 영업리더가 돼야 한다.
해가 바뀌거나 새로운 리더가 오면 미래지향적 영업, 가치 중심 영업, 고객 중심 영업, 인력개발 등 핵심 주제가 강조되고, 변화와 혁신이 곧 이뤄질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단기성과, 목표달성에 모두 매몰되어 요란했던 구호는 이내 잠잠해진다. 이런 패턴에 익숙한 직원은 변화와 혁신을 이벤트의 단골 메뉴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영업은 결과로 얘기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의 결과는 오랫동안 쌓인 여러 사람의 노력 산물이고, 과거의 잘못된 문화와 일부 직원 실수에 의해 잉태된 재앙이기도 하다. 결과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과정'을 가르치고 바로잡는 사람, 단기 목표에 모두가 매몰돼도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다. 그 주체가 바로 영업리더다. '단기와 장기' '결과와 과정'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은 큰 리더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셋째 일관성(Consistency)은 영업리더의 칼이다. 신뢰는 영업리더뿐만 아니라 모든 리더의 생명선이다. 그럼에도 리더에 대한 믿음이 약한 영업직원을 흔히 본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리더에 대한 불신의 근원은 '일관성 상실'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오늘 얘기하는 것이 어제 말한 것과 다르고, 룰 적용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개인 욕심과 이해 충돌에 따라 입장을 바꾸면 믿음은 사라진다.
영업 현장은 전장(戰場)이고, 영업리더는 병사와 함께 적과 싸우는 장수이다. 전장의 규율보다 더 무서운 칼이 영업리더의 일관성이다. 이것은 무서운 벌칙의 칼이 아니라 영업 조직을 강하게 묶는 부드러운 칼이다. 분명 쉽지 않지만 스스로 당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이다.
노자는 도가 있으면 말을 버리고 농사를 짓고(天下有道, 却走馬以糞), 도가 없으면 군마가 전장에서 새끼를 낳는다(天下無道, 戎馬生於郊)고 했다.
지금도 현장에선 숫자에 내몰리는 영업 조직의 비명이 가득하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서지 않는다. 영업리더는 결과 보이기에 몰입하고, 회사는 인센티브라는 당근으로 총알받이를 키우고 있을 뿐이다. 영업 조직의 가치는 폄훼되고 있고, 직원은 자괴감 속에 산다.
이런 악순환을 막을 유일한 존재가 일선 영업리더이다. 바른 영업의 도(道)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일선의 영업리더가 ABC를 지키고 실행한다면 바꿀 수 있다.
이장석 한국영업혁신그룹(KSIG) 대표 js.aquina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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