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국회에서 발목 잡힌 탄력근로제·최저임금 보완입법

국회에서 노동 법안 처리가 늦어져 기업 고민이 커지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내용을 담은 노동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발목 잡혔다. 이달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이 종료됐지만 이를 이행하는데 필요한 보완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기업 경영에 혼선을 주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했지만, 국회 입법 논의는 진척이 없다. 제도 개선 방향이 정해졌는데도 국회 논의 지연으로 입법 공백이 생겼다. 피해와 혼란은 현장에서 떠안는 형국이다. 최근 2년 새 30% 수준으로 급하게 오른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을 위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서두르는 모양새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으면서 내년 최저임금은 예전 방식대로 결정될 공산이 커졌다. 기업은 3~5일 마지막 남은 3월 임시국회 기간 동안 노동 현안 입법이 이뤄지길 기대했다.

◇주 52시간 계도기간 종료…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시급

이달부터 직원 300인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은 주52시간 근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채 근로시간 단축의 계도기간이 끝났다. 기업은 '범법자가 돼도 방법이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6개월로 합의되며 숨통이 트이나 했는데, 이마저도 국회에서 표류하며 불확실성만 커졌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은 임금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업은 노조와 단체협약 논의를 미룰 수밖에 없다. 탄력근로제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법적 가이드라인 부재로 인해 기업의 임단협도 늦어지는 등 불확실성이 가중됐다.

탄력근로제 도입 요건이라도 간소화시키는 것도 시급하다는 주문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기업은 탄력근무제 도입을 위해 일별 근무일정을 제출해야 한다. 변수가 많은 산업 특성상 지적이 제기되자 경사노위는 단위기간 확대와 함께 스케줄 단위를 주간으로 바꿨지만, 국회에서 발목 잡힌 상태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계는 지난해부터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원 부족 대책을 정부에 지속 건의하고 있다.

벤처업계는 기업 현장 사정을 반영하지 않은 정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규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지금 근로시간 단축이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벤처기업에게 또 다른 규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다. 개별기업 특성을 반영한 유연한 근로시간 실현을 요청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대 1년으로 확대하고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소프트웨어(SW)·정보기술(IT)서비스 업계는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를 요구하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 실망감을 내비쳤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는 “경사노위에서도 논의 필요성을 공감해 환노위에서 논의해야할 사안이라 얘기했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밀려 전혀 얘기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일부 준비된 대기업은 여유가 있지만 중견·중소 IT서비스 업계는 법 개정 없이는 하반기 프로젝트에 대응하기 힘겨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중소 SW 업체 대부분이 법 적용대상에 포함된다”면서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정부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지 않으면 그 피해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돼 산업 전체가 타격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 반발이 여전해 변수다. 노동계는 이번 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과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을 위한 국회 노동관계법 개정 움직임에 맞서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인다. 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5일에는 '노동법 개악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내걸고 여의도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해 국회를 압박하기로 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조절 필요…결정체계 개편 절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도 무산될 위기다. 정부가 연초부터 결정체계 개편을 서둘렀지만 국회에서 계류되면서 개선 의지가 무색해졌다. 최근 2년 간 29%라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겪은 소상공인·중소기업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국회 환노위는 지난달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어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이 담긴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할 계획이었으나 여야 간 의견차이만 확인했다.

국회 논의가 더디자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에 기존 절차대로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내년 최저임금도 현행 체계 그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환노위는 지난달 15일 전체회의를 열어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내용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두고 여야가 공익위원 구성과 결정 과정 등에서 이견을 보였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이나 결정기준 개편을 담은 개정안도 발의돼 병합심사도 해야 한다.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규모별 구분 적용 법제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임금 지급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영세 업종 소상공인만이라도 별개의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도록 규모별 구분적용 근거 규정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최저임금 미만율이 일정 수준 개선될 때까지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기업지불능력 포함 여부 역시 관건이다. 정부는 기업지불능력을 제외한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이 급격히 증가하는 만큼 기업지불능력과 생산성, 실업률 등 구체적인 지표를 반영해 기업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안은 합리적이어야 하는데 구간설정위원회에 노사공익상임위원에 주요한 경제주체인 기업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다”면서 기업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체계를 요구했다.

최저임금 도입 목적이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인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이후 영세 자영업종에서 고용감소나 매출감소 등 부작용이 발생하는 부분을 찾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세 중소기업을 한계상황으로 내몰아선 안 된다며, 기업의 지불능력이 최저임금 결정기준안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정부는 최저임금법 개편안이 통과되면 절차를 다시 밟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개편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도 시간이 촉박하다. 최저임금위를 다시 짜야하고 구간설정위와 결정위가 심의하는 두 단계 절차도 거쳐야한다. 이 때문에 올해 최저임금 결정기한을 10월 5일로 2개월 연장하는 내용을 개편안에 넣었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산 편성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8월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줄 것을 주문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에 대한 노동계 반발에도 맞서야 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에 따라 2020년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최저임금과 연동된 사업 등을 2020년 예산안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이번 국회에서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함봉균 정책(세종) 기자 hbkone@etnews.com,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김지선 SW 전문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