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만난 벤처인 '역차별·규제문제 해결' 집중 요구
#“다른 나라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더 강고한 울타리를 만든다. 우리는 자국 기업이 보호받기 어렵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적어도 국내기업과 해외기업에 적용되는 법안이 동등하게 적용되었으면 한다.” (이해진 네이버 GIO)
#“핀테크 규제가 많다 보니 외국 투자자에게 설명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7일 청와대로 초청받은 1세대 벤처기업인과 유니콘 기업 대표가 정부 정책 불만을 쏟아냈다. 글로벌 기업에 관대한 '역차별'과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규제문제' 해소에 집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80분간 기업 대표 7명과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를 가졌다. 그동안 벤처 기업인이나 스타트업 대표와의 만남은 종종 있었으나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유니콘 기업을 주인공으로 한 청와대 행사는 처음이다.
간담회에는 김범석 쿠팡,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권오섭 L&P코스메틱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가 참석했다. 이해진 네이버, 서정선 마크로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벤처 1세대 기업인도 멘토 자격으로 자리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혁신포용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면서 주된 성장동력을 혁신 성장에서 찾고 있다”면서 “혁신 창업이 활발해져야 하고, 그렇게 창업된 기업이 중견기업-유니콘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창업 생태계가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 기업은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 간 역차별 문제 △규제 개선 △주 52시간제 유연한 적용 △유니콘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등을 요청했다.
김택진 대표는 “다른 나라는 타국 기업의 진입이 어려운데, 우리는 거꾸로 해외기업이 들어오기 쉽다”며 “정부가 조금 더 스마트해지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경쟁사인 글로벌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망 사용료 등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 더욱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워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건 대표는 “국내 핀테크 제도와 정책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가 없다 보니 투자유치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외자유치를 위한 투자 불확실성을 줄여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새로운 시도에서 장점보다 단점을 더 부각하는 경향이 있어 (규제 개선) 속도가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이라면서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실적이 나오면 국민도 규제 유무 차이를 직접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7일에도 중소·벤처기업인 간담회를 마련했다. 한 달 만에 유니콘 기업 중심으로 벤처 업계를 다시 만난 것은 이례다. 관련 정책에 대한 회의적 여론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그동안 미국, 중국 등은 유니콘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하고 전폭 지원했지만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국내 유니콘 기업 수는 초라하다. 미국의 시장분석기관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글로벌 유니콘 수 311개 가운데 우리는 6개 기업만 이름을 올렸다. 미국은 151개, 중국은 85개를 차지하고 있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에도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아세안국가의 유니콘 기업 6곳의 가치(약 238억달러)가 우리나라 유니콘 기업 6곳의 가치(약 235억8000만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유니콘 기업을 하나도 탄생시키지 못한 아세안 국가에서 연이어 유니콘이 등장하고 있다.
이무원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가장 급한 건 규제 개혁이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산업구조와 혁신 생태계 대수술이 필요하다”면서 “여기에 불연속적인 벤처창업 지원, 실패와 저성과에 대한 불관용 문화, 높은 정부정책 자금 의존도 등 문제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대통령은 벤처기업인과의 간담회에 이어 이달 경제 행보를 계속 이어 간다. 8일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초단체장을 만난다. 이달 중순께는 부산을 방문, 도시 재생과 스마트시티 관련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자영업과 소상공인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