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시작한 리빙 랩(일상생활에 연구 결과를 반영하는 실험) 개념이 최근 국가 연구개발(R&D)에 적극 도입되고 있다. 일반 시민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R&D 초기 단계부터 문제 해결 과정에 적극 참여,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사회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불과 10년 전까지 버려진 항구이던 핀란드 헬싱키 인근의 칼라사타마는 리빙 랩을 통해 사물인터넷(IoT)·무인버스·스마트그리드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이 공존하고, 노후된 화력 발전소 대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하는 꿈의 미래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2030년까지 2만5000명이 거주하는 첨단 지역과 1만명의 일자리 확보를 계획하고 있는 등 말 그대로 거대한 도시 실험실이다. 이곳 주민은 직접 도시설계에 참여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과 함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신기술을 시험해 문제를 개선하는 등 최적의 스마트시티 완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7월 부산시와 세종시를 스마트시티로 지정한 바 있으니 지역 주민, 연구자 및 관련 기업들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세계 수준의 랜드마크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칼라사타마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제 R&D는 기술 개발 수단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개발된 신기술 수용성부터 도시환경 문제, 일자리 창출까지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합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자동차 등 에너지 신기술 보급 확대는 화석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설치 과정에서의 환경 훼손, 폐기된 패널로 인한 중금속 오염, 폐배터리 처리 등 사회 문제도 심화되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R&D 노력이 절실하다.
실례로 제주도는 '카본프리 아일랜드' 정책을 수립하고 세계 최초로 전기자동차용 폐배터리 재활용센터를 건립, 2019년부터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2025년이 되면 약 28만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폐배터리는 성능별로 재사용하거나 출력 용량이 적은 전기카트 등에 재사용할 수 있다. 폐기 대상은 중금속 회수로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등 재활용과 폐기에 대한 절차 및 기준은 물론 관련 법규 제도까지 마련하고 있다.
최근 이슈인 미세먼지 문제도 사회 문제 해결형 R&D의 대표 사례다. 노후 경유 차량의 조기 폐차 정책과 더불어 석탄발전소에 친환경 설비 교체 및 오염원 배출을 줄이는 기술을 적용하고, 건물의 공조시스템을 통해 미세먼지를 잡을 수 있는 R&D를 하고 있다. 또한 지역별 유입과 발생량을 과학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하는 등 국민 생활을 보호할 수 있도록 대응하고 있다.
매년 발생하는 가축의 질병은 토착병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금류의 조류인플루엔자(AI), 소나 돼지의 구제역은 축산업체의 막대한 손실뿐만 아니라 사체를 땅에 매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2차 전염 또는 토양 환경오염도 걱정이다. 작업 참여자의 트라우마 고통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 폐사도 같은 문제다.
대책으로 개발하고 있는 고열량 폐동물 대상 이동형 바이오가스화 생산 시설은 경제성을 떠나 친환경 바이오 폐기물 처리라는 측면과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인식돼야 한다.
기초 원천 기술 및 차세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R&D도 중요하지만 사회 문제 해결을 통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R&D 역할은 더욱 강조돼야 한다. R&D 착수 단계부터 최종 성과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지 고민하고 성과 확산에 필요한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는 모델을 먼저 제안해야 한다.
방대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연구위원 bang@ke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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