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 수립 과정에서 처음으로 자영업자를 독립 정책대상으로 규정했다. 기업 관점의 소상공인 지원을 넘어 자기노동으로 자영업을 하는 '자기고용노동자'라는 인식을 반영했다.
현 정부 들어 네 차례에 걸쳐 선보인 자영업 관련 대책으로 카드수수료, 임대차 문제 등 시급한 현장 애로는 일부 해소했으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성장 지원 체계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이에 현장 의견을 대책에 적극 반영하기 위해 자영업 협·단체로 구성된 민간 태스크포스(TF)를 구성, 12개 부처와 3개 소상공인지원 기관, 서울·경기·인천 등 지방자치단체 협의를 거쳤다. 단순 의견제시를 넘어 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고민하는데 민간이 함께 했다는 설명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이번 대책은 생소하지는 않지만 구조적이고 자생적인 생태계에 대한 정책을 다루면서 민간과 협의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며 “시장 상황이 척박하고 어려워 한 번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동의한다”고 말했다.
◇성장 역량 제고하고 준비된 창업 유도
정부는 '성장·혁신하는 자영업, 잘 사는 자영업자'를 종합대책 비전으로 제시했다. 자영업자가 성장·혁신을 통해 잘 살 수 있는 근본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기존 자영업 성장 역량 제고를 위해 구도심 상권 복합개발 사업인 '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과 연계해 자영업이 밀집한 구도심 상권을 혁신 거점으로 집중 육성한다. 새해 13곳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30곳 육성이 목표다. 복합청년몰, 특성화시장, 시설현대화, 주차환경개선사업 등 기존 전통시장 지원사업을 우선 연계해 상권활성화를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지자체가 빈 점포 매입 시 도시재상사업을 통한 점포 매입비용을 지원하는 사업도 시범 추진한다. 전통시장과 상점가에 소상공인지원센터를 배치하고 공동창고, 택배시설, 복합문화공간 등 생활기반시설과 연계한 공유자산을 확대한다.
자영업자가 성장·혁신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기업당 5억원 한도의 기술보증기금 소공인 혁신성장 우대보증도 신설한다.
준비된 창업을 유도하기 위한 교육 체계도 정비한다.
예비창업자 1만명에게 바우처를 지급, 사업자등록 전 업종별 전문기술 교육훈련을 지원하는 '튼튼창업 프로그램'을 새롭게 도입한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 기능은 복합형 교육시설로 확대·개편하고 2022년까지 6개소에서 전국 17개소로 확산한다.
아울러 창업지원 사업 참여시 상권정보시스템 내 '창업 자가진단' 이용결과 제출을 의무화해 창업 준비도를 높인다. 자영업종합 포털 신설로 업종·지역·부처별 정보 일괄 조회서비스도 제공한다.
별다른 기술 없는 퇴직자가 자영업으로 몰리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고민이 엿보인다. 다만 자영업 위기의 근본적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준비 없는 창업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다양한 퇴로 확보해 재기 발판 마련
자영업에 실패하더라도 다양한 퇴로를 제공해 연착륙하고 재기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우선 채무조정과 금융지원으로 재기를 지원한다. 지역 신보가 보유한 부실채권을 조기에 정리, 개인 연체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채무조정제도를 도입한다. 임대차 만료 이전 폐업으로 임차보증금을 반환 받지 못한 경우 저금리 단기자금을 공급할 계획이다.
소상공인지원센터에는 폐업지원 전담창구를 신설한다. 폐업신고, 사업정리 등을 원스톱 지원하고 심리치료와 사회적 자신감 회복을 지원한다.
폐업예정 소상공인이 임금근로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재기교육도 강화한다. 40세 이상 중장년 대상 경력진단, 진로설계 등 생애경력설계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자영업에 집중된 인생 3모작을 여러 취업 분야로 다변화해 보다 체계적인 준비를 도울 것으로 기대된다.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참여요건은 연매출 8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이하로 완화해 자영업자 취업 준비 기회도 확대한다.
◇골목상권 지키고 사회 안전망 확대
상가임차인 권리보호 범위 확대를 위해 상가임대차법 적용대상이 되는 환산보증금을 점진적으로 폐지한다. 철거·재건축 시 우선입주 요구권과 퇴거보상을 인정하고 임대차 표준 계약서에 목적물 원상회복 시점에 대한 표준규정을 추가해 분쟁을 예방한다.
복합쇼핑몰 등 대규모 점포의 골목상권 잠식 방지 방안도 담았다. 상권영향평가서를 내실화하고 교통영향평가심의도 강화한다. 대규모점포에 대한 입지·영업제한 등이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앞서 하위법령으로 우선 시행할 방침이다. 관련 개정안이 국회 계류된 상태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자영업 권익보호를 위한 사업조정제도 또한 개선한다. '중소기업단체'로 제한한 사업조정 신청을 단체가 있는 경우에도 피해지역 동일업종 3분의 1 이상 동의 시 신청 가능하도록 개선 예정이다. 사업개시, 사업축소 정도에 머물던 사업조정 권고범위는 '판매·마케팅 제한'까지 확대한다.
자영업자 사회안전망도 확충한다. 지자체별 노란우산공제 공제부금 매칭과 복지서비스 확대로 올해 136만명 수준인 공제 가입률을 2022년까지 18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공제 가입자 대상 교육·컨설팅과 취업연계 지원 프로그램도 신설한다.
아울러 1인 자영업자를 위한 4대 보험 지원기반을 마련한다. 창업 후 5년 이내로 제한하던 고용보험 가입조건을 폐지하고 체납 시 자동해지 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한다. 산재보험 역시 제조업 등 일부에 국한된 1인 자영업자 가입 가능업종을 전 업종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새해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4대 보험 지원타당성 검토를 위해 관계부처 합동 연구용역도 진행한다.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등 당면 현안은 빠져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당면 현안에 대한 보완책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중장기 성장대책은 마련했으나 지금 당장의 어려움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상당 수 대책이 기존 선보인 소상공인 관련 정책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자영업' 이라는 정책 대상의 모호함으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홍종학 중기부 장관은 “분기별로 추진 상황을 관리하고 새해 신설하는 '자영업 정책 관계부처 협의체'에서 과제 점검과 개선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자영업 현장과 소통을 지속 추진해 현장 상황에 따라 업종별·분야별 세부대책을 적시에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