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청주시 오창읍에 위치한 '체리부로방역관제센터'에 적색경보가 울렸다. A지역에 위치한 B육계농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상황실 모니터는 곧바로 AI가 확인된 지역을 중심으로 500m, 3㎞, 10㎞지역으로 방역대를 형성했다. 체리부로와 거래하는 농장 200여곳 농장주에게는 AI 의심 신고 지역, 위치, 경고메시지 등이 전송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 농장에는 AI 의심 신고지역에 방문한 차량 번호가 실시간으로 전파돼 자동으로 차량 출입을 막았다. 신속한 대처는 AI가 주변 농장으로 퍼지지 않도록 했다. 방역 체계망 형성과 실시간 차량 이력 관리가 빛을 발했다.
# 닭 6만 마리를 사육하는 A농장은 최근 폐사율을 0% 대까지 끌어내렸다. 뿐만 아니라 출하 성적 향상으로 수익률을 크게 개선했다. 체리부로 상황실에 모이는 전국 농장 빅데이터를 통해 도출된 양계 시스템 개선사항을 따랐기 때문이다. 온도조절기 파손이나 사료 부족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도 자동 발주 시스템과 실시간 스마트폰 알람으로 해결했다. 일손도 덜었을 뿐 아니라 안전한 육계농가 형성으로 고객 신뢰도 얻었다.
일부 시험 농장에만 적용되던 스마트팜이 실제 농업 현장에 대규모로 도입된다. 개별 농장중심이 아닌 관제센터에서 전체 양계농장 현황을 살피고, AI방역시스템을 갖춘 '체리부로방역관제센터'가 15일 공식 문을 연다. 2018년도 농림축산식품부 'CCTV 등 방역인프라 설치 지원'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결실을 맺어 '육계농가 스마트팜1호'가 탄생했다.
이번 사업은 닭고기 전문기업 체리부로와 양계인, 효성인포메이션이 농장현실과 접목한 소프트웨어(SW), 하드웨어(HW) 등을 결합해 만들었다.
체리부로(대표 김인식)는 'CCTV 등 방역인프라 설치 지원' 사업 계열화사업자로 위탁 농가의 영상을 관리하고, 중앙 관제 시스템을 이용해 출입차량 소독 등 방역 실태를 평가한다. 체리부로와 위탁 계약을 체결한 양계인(대표 박성용)은 HW 납품, 육계통합관리시스템(BTMS: Broiler Total Management System) 개발, 통합관제센터 구축을 맡았다. 효성인포메이션은 이들 시스템에 최적화한 히타치 밴타라 가상화 기반 통합영상관제 솔루션 'HVMP' 등을 공급해 스마트팜 구축 완성 기반이 됐다.
◇AI 발생 때마나 반복되는 조류 '살처분'…AI 발생농가도 찾기 어려워
우리나라는 2003년 12월 충북에서 처음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된 후 매년 같은 시기 AI가 발생해 조류 살처분 등으로 농가 피해가 심각하다. 2016년 발생한 AI는 이듬해 장마철까지 이어지면서 살처분 숫자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감사원이 작성한 '가축전염병 예방 및 방역 관리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17년 발생한 AI로 총 3807만 마리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이는 2011년 이후 고병원성 AI발생으로 살처분된 가금류 총 7146만 마리 53%에 해당하는 양으로 소요된 재정규모는 3688억원에 달했다.
AI발생은 단순 살처분으로 인한 소요 재정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들 살처분 가금류 가운데 닭이 대부분 숫자를 차지했고, 계란을 낳은 산란계닭도 30%에 달했다. 살처분 여파는 곧바로 계란 소비자가 폭등으로 이어졌고, 대형마트에서는 30알짜리 판란을 찾아보기 어려운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해외에서 계란을 수입해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AI 발생 후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취한 대책은 살처분이 유일하다. AI 발생 농가를 중심으로 500m에서 3㎞까지 지역을 위험지역으로 규정하고 해당지역 내 가금류를 모조리 땅에 파묻는 방식이다. 사후 처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AI 확산 방지책이 절실했다.
◇농식품부, ICT 활용한 'CCTV 등 방역인프라 설치 지원' 사업 실시
농식품부는 계속되는 AI 발생을 막기 위해 올해 'CCTV 등 방역인프라 설치 지원'을 시행했다. 가금 사육농가에 CCTV를 통한 영상기록물과 해당 영상을 분석·관제하는 시스템을 활용해 AI 발생뿐 아니라 2차 확산을 막겠다는 복안이다.
체리부로는 농식품부 지원사업에 맞춰 양계인과 손잡고 육계통합관리시스템(BTMS)을 도입했다. BTMS는 차량번호인식과 영상관리를 바탕으로 차량 추적과 통제를 실시간 확인한다. 초기 발생지역을 정확하게 파악해 AI발생 이후 2차 감염을 방지하는 역학조사에 필수 역할을 기대한다.
AI확산을 막기 위해 농가가 스스로 관리하도록 정부는 AI 발생농장에 보상금을 일부 차감하는 패널티를 부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AI원발 농장을 찾는 역학조사는 정확한 데이터 확보가 어렵고, 구두 등 농민 개별 기록에 의존해야 했다. 곳곳에서 원발 농장과 실갱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시스템 도입으로 차량 추적관리 등이 수월해 역학조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성용 양계인 대표는 “단순해 보이는 차량번호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기술과 사업 노하우가 숨어있다”면서 “농가 특성상 양방향 차량 출입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일 방향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기술부터 밑단에서 개발을 시작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BTMS 시스템 등 일선 육계농가에 설치되는 스마트 시스템은 AI방지뿐 아니라 개별 육계농가 경쟁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온도, 습도, 화재 감지 등으로 개별 농가 일손을 덜을 뿐 아니라 수백여개 농가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브랜드화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규 체리부로 본부장은 “모니터링 요원이 없더라도 각 농가에서 발생하는 이벤트는 담당자와 농가주에게 스마트폰 알람이 전송된다”면서 “모든 사건은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되기 때문에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리 편의성도 대폭 개선된다. 체리부로는 전국 양계 농장에 출하 전 검사 등을 위해 직접 직원이 파견 나가 온도, 습도 등을 체크했다. 하지만 매일 새벽 4~5시 출하되는 농가 현실상 이를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스마트팜 전환 이후 이들 인력은 전문교육을 통해 농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김강흥 체리부로 전무는 “우리나라는 육계사육 등이 발달한 동남아와 달리 사계절로 관리가 어렵고, 인건비, 토지 등 사육원가가 비싸다”면서 “국내가 보유한 IT를 바탕으로 중앙 관리함으로써 사육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높여 축산업 전체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체리부로는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전국 양계 농가(강원도 제외) 72개에 12월까지 관련 시스템을 설치한다. 일부 지자체 등과 지원 사업비로 인한 갈등을 빚고 있으나 내년 200여 관리 농가 모두 설치 완료가 목표다. 향후 체리부로 외 대형 닭고기 전문 기업이 이들 스마트팜 구축에 나설 경우 육계농가 효율화뿐 아니라 AI 확산방지 효과가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스마트영농 구현 중심에는 선진화 된 'IT'…효성인포메이션 'HVMP'로 영상 분석 한계 뛰어넘어
스마트팜 구축은 IT와 농가 현장 노하우가 결합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과거에도 다양한 스마트팜 구축 시도가 있었으나 개별 농가 반대뿐 아니라 영상데이터 수집 처리하는 역량이 부족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체리부로, 양계인, 효성인포메이션은 시스템 개발과 적용까지 협업을 통해 사회와 기술 문제를 해결했다.
체리부로는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히타치 밴타라 영상 인프라 플랫폼 'HVMP'를 도입해 스마트 영상관제와 영상분석 인프라를 구축했다. HVMP는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하드웨어를 컨버지드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히타치 차세대 영상 솔루션이다. HVMP 플랫폼은 CCTV 수천개 채널 영상을 동시 처리 가능해 높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전국 농장을 설치·관리가능하다.
효성인포메이션 관계자는 “자동차가 출입하는 기술을 구현하는 것부터 영상관제 최적화까지 현장과 긴밀한 협의가 없었다면 스마트팜 1호 구축이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보수적인 개별 농가를 설득하고, 이들이 받게 되는 효용이 무엇인지 설득하는 과정 등 기술과 농업 노하우가 조화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